[G-50 특별기획 강원도 동계스포츠 개척자를 찾아서]빌린 스키로 美 대회 활강 출전…한국인 첫 완주 / 홍인기(대학원 체육학과 석사과정 83) 동문
◇위부터 홍인기 평창군스키협회장이 우리나라 선수들의 선전과 평창동계올림픽 성공 개최를 기원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홍인기 회장(사진 오른쪽)이 1980년 미국 레이크플래시드의 활강 경기를 완주한 뒤
최호 전 대한스키협회 부회장으로부터 격려를 받고 있다.
3천m 대회 코스 도중 폴 한개로 버틴 끝에 47명 중 40위 골인
선수생활 마감 지도자로 올림픽 경험 "후배들 평창서 이변 기대"
한국 활강은 불모지나 다름없다. 2018평창동계올림픽 활강 경기가 열리는 정선 알파인 경기장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코스는 물론 활강에 도전하려는 선수도 마땅히 없었다. 하지만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에 활강용 스키조차 없던 시절 동계올림픽 활강 종목에 출전해 풀코스 완주를 했던 스키인이 있다. 바로 홍인기(56) 평창군스키협회장이다.
■1등보다 값진 완주=1980년 미국 레이크플래시드의 활강 코스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해발 832m 높이에 총 코스 거리는 3,009m다. 정선 알파인 경기장(2,852m)보다도 길다. 홍인기 회장은 이 코스를 딱 두 번 연습한 뒤 실전 경기에 임했다.
홍 회장은 “슬로프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까마득했다”며 “진짜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지만 이번 아니면 못 할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한국 선수 최초로 활강 완주라는 대업에 도전했지만 장비조차 구비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홍 회장은 대회전용 스키로 활강 코스에서 연습했다. 스키 길이가 너무 짧아 제대로 타기 어려웠다. 결국 어렵사리 오스트리아 관계자에게 활강용 스키를 빌려 경기에 나섰다. 스키용 폴(스틱)도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당시 감독 겸 코치로 동행한 어재식(69) 대한스키협회 스키원로인회 부회장에게 빌렸다.
어색한 장비를 착용하고 활강 경기에 나서다 결국 레이스 도중 악재가 발생했다. 홍 회장이 가파른 슬로프를 내려오다가 오른쪽 폴을 한 개를 놓친 것이다. 그는 “눈 앞이 깜깜해지더라”며 “기록보다도 사는 게 먼저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결국 극한의 공포를 버틴 그는 출전 선수 47명 가운데 40위의 기록으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그런데 폴을 놓친 게 전화위복이 됐다. 폴을 한 개만 가지고 완주한 장면을 마침 현지 방송인 ABA TV가 포착했다. ABA TV는 올림픽 소식을 전할 때마다 홍 회장의 경기 영상을 방영했다.
■자나 깨나 평창동계올림픽 생각=홍 회장은 국민대를 졸업하고 스키 선수 생활을 마친 이후 지금까지 한국 스키 발전을 위해 뛰고 있다. 지도자 자격으로 1992년 알베르빌,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에 참가하기도 했다. 현재는 대한스키협회 스키·스노보드·프리스타일 종목 총괄 부장과 평창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알파인스키(정선 알파인 경기장)의 경기위원장을 맡고 있다. 홍 회장은 “대회는 훌륭하게 치러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문제는 한국 선수들의 성적”이라며 “개최지의 성적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안방에서 스키 후배들이 이변을 연출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