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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윤동주가 여성이라면... '젠더프리' 연극 어떻게 만들었을까 / 서재길(한국어문학부) 교수 및 알파프로젝트 참여 학생들

후쿠오카 형무소의 윤동주 다룬 소설 <별을 스치는 바람>, 일본에서 한국으로 온 이유

 

 


▲  연극 '별을 스치는 바람' 중 한 장면.
ⓒ 국민대 대학혁신추진단

 


시인 윤동주가 여자로 나오다니? 연극 '별을 스치는 바람'을 관람하다 놀라고 말았다. 대학생들이 학교 수업의 일환으로 무대에 올린 연극이었기에 배역에도 성별의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짐작은 했다. 그럼에도 무대에 남성 배우가 없지 않았는데 주인공 격인 윤동주를 여성 배우로 배치한 시도는 관객들을 놀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어색하고 의아했던 첫 등장도 잠시, 연극이 진행되면서 대학생 배우 권연지가 연기한 윤동주는 금세 여성으로도 충분히 납득이 됐다. 


연극을 보고 나오는 길에 온라인 설문으로 소감을 남겨달라는 단체 문자를 받았다. 첫 번째 설문 문항은 다음과 같았다. "본 공연은 젠더프리(캐릭터의 성별에 국한되지 않은 캐스팅)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인물의 성별과 배우의 성별이 상이하여 생기는 문제점이 있었나요? 혹은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았나요?" 


일본 극작가가 각색한 연극, 최초로 국내 무대에 학생극으로 올라


연극 '별을 스치는 바람'은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인기 소설 '뿌리 깊은 나무'를 쓴 이정명 작가의 2012년 작 소설 '별을 스치는 바람'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별을 스치는 바람'은 1944년 윤동주가 수감돼있던 후쿠오카 형무소를 배경으로 시작한다. 


소설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수인을 괴롭히던 간수가 살해를 당하는데, 그의 간수복 주머니에서 윤동주가 쓴 시가 발견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팩션(팩트(fact)와 픽션(fiction)을 더한 단어로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해 새롭게 창조한 작품을 말함)'이다. 


이정명 작가의 소설을 무대에 올릴 수 있는 대본으로 각색한 건 흥미롭게도 일본의 극작가 겸 연출가 시라이 게이타였다. 시라이 게이타는 '별을 스치는 바람'을 각색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2020년과 2023년, 2024년에 연극으로까지 만들어 일본 내에서 여러 차례 무대에 올렸다. 현재까지도 일본에서 '별을 스치는 바람'이라는 이름으로 순회 공연이 열리고 있다.
 

 

▲  연극 '별을 스치는 바람'의 한 장면.
ⓒ 국민대 대학혁신추진단

 


'별을 스치는 바람'은 간수 살해 사건의 범인을 파헤치는 과정을 중심 줄거리로 삼으면서도 폭력적인 시대에 문학의 쓸모를 이야기한다. 극 상황에 맞춰 윤동주의 명시(名詩)들이 여러 차례 무대 위에서 영상으로 비춰지기도 하고 낭독되기도 한다. 


이번 연극은 서울 성북구에 있는 소극장 '여행자극장'에서 지난 6월 초 단 두차례 무대에 올려졌다. 배우들은 모두 국민대 학생들이었다. 


서재길 국민대학교 한국어문학부 교수는 이 연극을 일본에서 관람하고 반해 연극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해서 최초로 국내에서 연극을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서 교수는 '별을 스치는 바람'을 두고 "역사적 사실과 픽션이 섞여 있는 원작을 무대예술로 잘 승화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라면서 "한국에서도 이 작품이 소개되기를 바라는 소박한 바람이 학생극 공연 프로젝트라는 결실로 이어지게 됐다"라고 했다.


그는 '알파 프로젝트'라는 수업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출연부터 연출, 기획, 무대감독, 미술감독 등을 맡겨 양일간 해당 극을 최초로 국내 무대에 올렸다. 학생들은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것으로 기말 시험을 치른 셈이다. 


윤동주와 더불어 해당 극의 주인공으로 간수 살해 사건을 조사하게 된 학병 유이치 역할 역시 여성 배우가 맡았다. 이 연극에서 드라마터그를 맡은 김채봉(한국어문학부 석사과정)씨는 "원작 소설 '별을 스치는 바람' 속에서 유이치 역할은 학병으로, 고등학생 정도의 나이에 학교를 다니다가 강제로 차출된 인물이다. 소설을 좋아하는 등 교양적 세계에 살던 한 인간이 (형무소라는) 야만적인 세계에 던져졌는데, 이러한 극명한 차이를 섬세하게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맡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라고 언급했다.


연극 '별을 스치는 바람'의 연출을 맡은 학생 김진우씨는 '젠더프리' 연극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 "배역을 정하는 과정에서 배우들이 배역을 남성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할지, 아니면 여성도 남성도 아닌 존재로 연기할지에 대해 소통하면서 자기 자신과 가장 잘 와닿는 젠더로 배역을 결정해 연기했다"라면서 "윤동주라는 실존 인물이 가진 강력한 이미지가 있으나 배우에게는 '결국 너와 똑같은 '사람'인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극을 만들어가려 했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이날 연극을 본 한 관객은 "윤동주가 정말 여자였을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들 정도로 탁월했다"라는 소감을 남겼다. 


김채봉씨는 "연극을 무대에 올리며 학생들이 식민지 상황을 이해하고 과거를 배우는 데 연극 자체가 효과적인 교육 도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국 사회에서 식민지였던 과거가 먼 이야기가 됐고, 최근에는 마치 잊어야 하는 이야기인 양 언급되지 않나"라고 했다. 이어서 그는 "'별을 스치는 바람'은 윤동주와 유이치라는 두 식민지 청년이 문학을 통해 폭력적인 세상에서 자기 반성과 성찰을 하고 그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작품이다. 이 청년들의 고민과 오늘날 청년들의 고민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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