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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학과 '영산강문화 2천년' 각 언론사 보도
'영산강문화 2천년' 책으로 나왔다
강과 다도해가 어우러진 독특한 문화 서술

남도문화와는 또 다른 묘미를 풍기는 '영산강 문화'라는 말이 요즘은 고유 트렌드처럼 다가오기 시작했다. 한반도 남서부의 젖줄 영산강이 빚어낸 문화 전통은 동시대 인근 다른 지역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구석이 적지 않다.

삼국과 가야가 태동하기 시작하던 무렵 이 지역에는 옹관문화가 꽃을 피웠다. 대형 독을 시신을 안치하는 관으로 이용하는 대형 옹관묘 문화는 이제는 문화상품으로까지 격상한다.

옹관이 이룩한 토기문화 전통은 고려시대에는 이 지역을 청자 생산지로 만든다. 강진청자라는 바코드는 이미 고려시대에 찍히기 시작한 것이다.

영산강 문화를 논할 때 강 외에도 바다를 떼어서 생각하기 힘들다. 장보고의 청해진, 삼별초 항쟁, 임진왜란의 명랑해전 본거지가 모두 이 지역이었다.

국민대 국사학과가 우리 역사문화의 갈래를 찾기 위해 전국을 10개 '문화권'으로 설정해 그 지역 역사를 탐방하는 여섯 번째 결과물 '영산강 문화권'(역사공간)에서는 개별 유물이나 유적을 뚝 떼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그것들 상호간의 시공간적 간극을 메우는 작업을 시도했다.

예컨대 이 지역을 무대로 만개한 고려청자 문화를 천년 전 같은 지역을 문화적 기반으로 삼은 옹관 문화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보기도 했다.

'문화권'이란 개념을 '오랜 역사와 전통 속에서 생활권ㆍ학맥ㆍ통혼권ㆍ상권이 어우러져 형성된 역사문화의 공간'으로 정의하는 이번 책은 영산강 문화권이 강과 다도해가 어우러진 독특한 문화를 이룩했다고 본다. 295쪽. 1만7천원.

[호남일보 2006-05-08 11:11:28] 정종관 기자 기자



"영상강문화권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나"
청동기 이후 찬란했던 문화 역사적 궤적 총제적 조망

'영산강문화권-들녘과 바닷길로 어우러진 2천년'(국민대 국사학과 지음, 역사공간 펴냄)
영산강문화권은 일찍이 농경문화와 해양문화를 토대로 경제적 번영을 구가했으며 중국, 일본 등과 교류하며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선진지역으로 자리매김된다. 고인돌과 옹관, 청자 등은 물론이고 선비와 민중을 아우르는 남도문화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만의 고유성으로 영산강문화권은 역사 위에 자기 색깔을 분명히 드러냈다.

청동기시대부터 삶의 문화가 번성했던 이 지역이 어떤 역사적 자취를 남겼는가를 조목 조목 조망해 지역민의 자존심을 드높이고 동시에 어떤 역사적 비전을 가져야 하는지를 다지는 책이 나왔다. 국민대국사학과가'우리 역사문화의 갈래를 찾아서'란 연재 기획아래 펴낸 '영산강문화권-들녁과 바닷길로 어우러진 2천년'(역사공간 펴냄)이 그것이다.

이 지역의 역사는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문화로부터 시작된다. 한반도내 4만여개가 분포된 고인돌이 이 지역에만 무려 2만여개가 군집해있다. 이로 미뤄 이 지역은 청동기시대부터 어느 지역 못지 않게 문화가 번성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고인돌문화는 마한시대에 옹관문화로 이어졌고 이 옹관문화는 고려에 이르러 세계적으로 빛나는 청자문화의 토대를 구축한다.

통일신라시기 완도 청해진에 장보고가 바닷길을 통한 해상왕국을 세우며 중국 일본 서남아시아 등지에 이르기까지 문물교류의 폭을 넓힌 중심지 역할을 했다. 해상세력이 활기를 띠었던 9세를 전후로 해상호족세력이 등장했고 이들 세력은 왕건과 결합하면서 후삼국 통일, 즉 고려 건국에 지대한 공헌을 한다.

중국과의 활발한 교류에 힘입어 해외선진문물과 사상을 재빨리 받아들이되 이를 주체적으로 수용해 우리 고유 문화로 꽃피운 것도 이 지역이 가진 우수성이라 할만하다. 흙과 상감으로 빚어낸 고려청자, 선종불교 등이 그것들이다.

당파간의 쟁패가 빈번히 일어나 호남사림의 터전을 일구었고 그 결과 특유의 남도문화를 싹틔웠다. 정여립 사건 이후 크게 피해를 입으면서 이 지역의 사림세력은 쇠락해가고 공도정책으로 바닷길이 쇠퇴했으며 17세기 이후 유배지로 전락해 중앙정계로부터 차츰 멀어져갔다. 반면에 시서화, 누정, 판소리 등으로 대표되는 특유의 남도문화가 크게 발달했다.

또 민족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분연히 떨쳐 일어선 곳도 다름아닌 영산강문화권의 선비와 민중들이다. 동학농민전쟁과 의병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났는가 하면 1929년엔 광주학생운동의 발원지가 됐다. 또 1980년 광주민중항쟁의 값진 희생을 치르면서 한국민주주의 운동의 새 기원을 이룩했다.

이 책의 특징은 지역사의 변천을 중앙과 연결지으면서도 그 자체의 결승과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저술하려 하려 한 점이다. 국민대 국사학과측은 "지배세력의 문화 뿐 아니라 서민의 생활과 문화를 통사적 흐름에 접맥시켜 보았으며 바닷길에 익숙한 뱃사람들이 있었기에 활발한 해상활동이 가능했다는 것과 판소리가 나오기까지 남도의 환경과 정서를 주목해 본 것 등이 그같은 관점에서 접근한 사례"라고 설명한다.

[광주매일 2006년 05월 08일 00시 00분 입력]김영순기자yskim@kjdaily.com



들녘과 바닷길 너머 2천년

들녘과 바닷길 너머 2천년
국민대 ‘영산강문화권’ 발간
영산강문화권의 역사문화를 종합한 총서가 발간됐다.
국민대 국사학과가 우리 역사문화의 갈래를 찾기위해 10개 문화권을 설정, 그 6번째 결실로 ‘영산강문화권’(역사공간)을 펴냈다.

지역의 역사를 문화권으로 구획한 것도 독특하지만, 개별 유물 유적에 함몰되지 않고 역사문화의 자취를 통사적 흐름에서 재구성, 재해석 한 점이 남다르다.

이 책은 영산강 문화권이 지닌 역사와 문화를 통사적 체계로 살피기 위해 크게 ‘총설’과 ‘역사문화’로 나눠 구성하고 있다. 영산강문화권이 걸어온 2000년의 길을 개관한 ‘총설’은 영산강문화권의 형성 배경과 역사지리적 조건 등을 통해 문화권의 기본 성격을 살폈다.

‘역사문화’에서는 통사적 큰 틀에서 시대별 변천 및특징을 크게 8단락으로 나눠 살펴보고 있다. 영산강문화권의 원류 마한, 바닷길을 통한 불교사상의 수용과 해상활동, 고려 건국에 기여한 나주의 토착 세력들, 고려가 일궈낸 문화와 개혁, 대숲 맑은 바람소리에 앉아서 남도의 정취와 멋 등이 그것이다. 또한 영산강을 둘러싼 내륙과 서남해안의 연안과 도서지역을 무대로 전개된 영산강문화권의 2000년 자취의 특징을 연계시킨 점도 눈길을 끈다.

청동기 시대의 농경문화에서부터, 마한의 고유문화, 다도해의 해양문화, 나주의 해상세력, 나말여초의 불교문화, 특유의 남도문화를 이어 봉건수탈이 극심했던 시기에 이어 독립운동의 중심지로 발돋움해 80년 광주민중항쟁까지 살아있는 역사의 승리과정을 보여준다.


[전남매일 2006년 05월 08일 00시 00분 입력] 최진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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