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신용사회와 신뢰사회 / 조중빈 교수 (정치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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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 조중빈] 신용사회와 신뢰사회는 비슷한 말 같지만 천지 차이가 난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한 적이 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월셋집을 구할 때의 일이다. 집을 둘러보고 집주인과 조건을 맞춰본 다음 계약서에 서명하려는 순간 집주인이 짐짓 망설였다. 미국 내에서 다달이 납부한 기록 같은 것이 없냐는 것이다. 전에 월세를 낸 기록이라든가 아니면 전화요금이나 전기요금 영수증도 좋다는 것이다. 여태까지 내가 누구이고 무엇 하러 왔고 내 가족은 어떻고 하며 설명한 것은 아무 소용없는 일이란 말인가? 더 기막힌 일은 새로 전화를 놓는데도 내놓을 만한 기록이 없으면 상당한 금액의 보증금을 예치하라고 했다. 당신이 누구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뭔가 꾸준히 믿을 만한 일을 했다는 기록, 영어로는 크레디트, 우리말로는 신용이 문제가 되는 사회, 이것이 신용사회다. 우리는 어떤가? 그런 식으로 나오면 쩨쩨한 사람이라고 왕따당한다. 그 사람의 행색이나 용모를 본 다음 무엇 하는 사람인지, 가까이 지내는 사람은 누가 있는지 정도 파악되면 믿을 만한지 아닌지가 결정 난다. 결정한 다음에는 통 크게 꽉 믿어버린다. 발등 찍힐 때까지 말이다. 이것이 믿는 사회, 곧 신뢰사회다.
조중빈 국민대 교수정치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