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중앙선데이] 거란 40만 대군 쳐들어오기 전날 축제 강행, 왜?/박종기(국사학과)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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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년(현종1) 10월 1일 고려는 거란의 침략 조짐을 알아차리고 강조(康兆)를 최고사령관으로 해 30만 군사를 강동 6성의 하나인 통주(通州;평북 선천)에 집결시킨다. 한편으로 그해 10월 8일 거란에 사신을 보내 화의를 요청한다. 그러나 거란은 사신을 억류하고, 고려에 침략을 통보한다. 11월 1일 고려는 다시 사신을 보내 화의를 모색한다. 하지만 거란은 “국왕 성종이 직접 고려를 공격할 것”이라고 통보한다. 고려가 두 차례 보낸 사신들은 결국 거란의 고려 침략을 통보받으러 간 꼴이 되었다. 11월 16일 거란 성종은 40만 대군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 고려를 공격한다. 11월 24일 고려의 30만 대군은 거란군에 참패를 당하고 최고사령관 강조는 포로가 된다. 12월 거란군이 개경에 접근하자 그달 28일 현종은 남쪽으로 피란을 떠난다. 사흘 뒤인 1011년(현종2) 1월 1일 수도 개경이 점령된다. 2차 거란의 고려 침략 당시 긴박한 상황이 『고려사』에 이같이 기록돼 있다. 고구려 동맹과 신라 화랑도 정신 계승 건국 이후 왕조 멸망 때까지 꾸준히 개최 원문보기 :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30909 출처 : 중앙선데이 기사보도 2013.0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