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중앙선데이]불교 지식과 첨단 인쇄술 결합된 5000만 자의 하이테크/박종기(국사학과)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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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말씀을 담은 경장(經藏), 그것을 해설하고 내용을 보완한 논장(論藏), 수행자의 계율을 담은 율장(律藏) 등 불교와 관련된 경전을 전부 모은 게 대장경이다. 대장경에는 편찬 당시까지 전래된 모든 경전이 포함되어 있다. 한 왕조에서 두 번이나 대장경을 만든 세계 유일의 왕조가 고려다. 고려, 대장경 두 차례 만든 유일한 왕조 고려가 짧은 기간에 대장경을 완성한 것은, 이규보의 증언과 같이 불심(佛心)으로 몽고 침략을 물리치려는 고려인의 혼과 정성의 결과였다. 추사 김정희가 재조대장경을 보고 “이것은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 신선이 쓴 글이다(非肉身之筆 乃仙人之筆)”라고 극찬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 규모도 대단하다. 재조대장경에 새겨진 글자 수는 약 5200만 자다. 500년 역사가 기록된 조선왕조실록의 글자 수가 5600만 자인 점을 감안하면 그 규모가 어떤지 짐작할 수 있다. 숙련공이 하루 평균 40자를 새길 경우 5200만 자를 새기는 데 연인원이 약 130만 명 동원됐을 것이다. 16년의 작업을 전제로 하면 하루 평균 300명에서 1000명 이상이 동원된 셈이다. 평균 길이 68~78㎝, 폭은 약 24㎝, 두께 2.7~3.3㎝인 경판을 가로로 눕혀 쌓으면 백두산 높이에 가깝다. 그것을 이으면 150리가 된다. 1개 경판을 만들기 위해 지름 40㎝인 원목은 2만7000그루, 지름 50~60㎝인 원목은 1만~1만5000그루가 필요하다(박상진, 『나무에 새겨진 팔만대장경의 비밀』, 2007년). 재조대장경 작업이 단기간에 끝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초조대장경을 제작한 경험이다. 재조대장경에 관한 기록에 따르면 저본(바탕이 된 경전)의 60%는 초조대장경이다. 재조대장경이 단기간에 완성된 가장 큰 이유다. 초조대장경은 불타 없어졌지만, 그것을 종이에 찍은 인본(印本)은 현재 1900점 정도 남아 있는데, 일본(약 1700점)과 한국(약 200점)에 각각 전해지고 있다. 둘째, 재조대장경이 저본으로 삼은 나머지 40%는 초조대장경 이후 송과 거란에서 새로 수집한 경전이다. 즉 초조대장경 제작 이후(1087년) 재조대장경 제작(1236년)까지에 이르는 약 150년 동안 동아시아에 유통된 수많은 불교 경전을 꾸준히 수집·정리한 것이다. 이처럼 축적된 연구가 있었기에 고려의 불교 연구와 이해가 당시 동아시아에서 최고 수준에 이른 것이다. 재조대장경의 독창성과 우수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고려 최고의 학승(學僧) 대각국사 의천(義天·1055~1101)의 역할이 컸다. 원문보기 :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31250 출처 : 중앙선데이 기사보도 2013.08.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