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중앙SUNDAY]학자 김부식, 인종도 쩔쩔매는 냉혹한 권력자 변신/박종기(국사학과)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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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년(인종1) 송나라 사신 서긍은 김부식(金富軾: 1075~1151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인물평을 남겼다. “김부식은 풍만한 얼굴과 커다란 체구에 얼굴이 검고 눈이 튀어나왔다. 널리 배우고 많이 기억해 글을 잘 짓고 예와 지금의 일을 잘 알아, 학사들에게 존경을 받기로는 그보다 앞설 사람이 없다.”(『고려도경』 권8 인물조) 한 달가량 고려에 체류한 그가 남긴 평가 속에는 그가 전해들은 고려인의 얘기가 섞여 있어, 당대 고려인의 평가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어쨌든 서긍의 눈에 비친 49세의 김부식은 고금(古今)을 꿰뚫는 박람강기(博覽强記: 박식하고 총명함)의 기백을 지닌 당대 최고의 학자였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그러나 묘청(妙淸)의 난이 진압된 지 4년이 지난 1139년(인종17) 김부식의 모습은 이와는 달랐다. 국왕 인종과 나눈 대화 내용이다. “(인종은) 김부식에게 송나라 사마광(司馬光)의 여러 글을 읽게 하고 그를 칭찬하면서, ‘사마광의 충성스러운 절의가 이렇게 훌륭한데 왜 사람들은 당시 그를 간사하다고 했는가?’ 하고 물었다. 김부식은, ‘왕안석의 무리들과 서로 좋지 않았기 때문이지, 잘못은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왕은 ‘송나라가 망한 것은 왕안석 때문임이 분명하다’라고 했다.”(『고려사절요』 권10 인종17년 3월)
왕권에 집착한 국왕 인종의 자충수 원문기사 :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31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