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헨델의 ‘음악 발전소’에 200년 뒤 록 둥지 튼 헨드릭스 / 조현진(미래기획단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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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 200년 뒤 이 건물 안에 또 다른 불세출의 음악인이 살게 된다. 미국 출신이지만 영국으로 건너와서야 스타로 거듭난 기타리스트. 바로 지미 헨드릭스다. 미국에서 좀처럼 상업적인 성공을 보지 못하던 헨드릭스는 뉴욕의 ‘카페 와(Wha)?’에서 그의 공연을 본 록밴드 애니멀스 출신의 베이시스트 체스 챈들러에 의해 재발견된다. 챈들러는 헨드릭스에게 런던에서 활동할 것을 제안하고 헨드릭스는 1966년 9월 24일 기타 한 대와 단돈 40달러를 들고 런던에 도착한다. 이후 런던 로큰롤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은 “헨드릭스를 처음 본 날 ‘나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고 훗날 회고하기도 했다. 68년부터 여자친구와 브룩 스트리트에서 살기 시작한 헨드릭스는 헨델이 한때 같은 건물에 살았다는 얘기를 접한 뒤 그의 음악에 심취했고 종종 집안에서 그의 유령이 보인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그가 헨델의 음반을 종종 구매하던 HMV 음반매장은 아직도 영국의 대표적인 대형 음반매장으로 영업중이다. 헨드릭스 전문가들은 그의 말기 공연 연주에 헨델의 영향을 받은 기타 리프가 자주 등장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클래식과 로큰롤의 기묘한 첫 만남. 이는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헨드릭스가 살던 공간은 현재 헨델 박물관의 행정사무실로 사용 중이다.
켄싱턴의 머큐리 자택엔 끝없는 팬 행렬
인디문화 중심 캠든, 패션과 맛의 거리로 반스의 중심도로인 처치 로드에는 수많은 음악인이 거쳐 간 녹음 스튜디오가 하나 있다. 바로 올림픽 스튜디오다. 로큰롤 역사에서 런던의 애비로드나 미국 LA의 선셋 만큼이나 중요한 스튜디오로 기록되는 명소다. 몇 차례 주인이 바뀌면서 지금은 작은 영화관과 카페로 변모했지만 녹음 스튜디오 기능도 조만간 다시 갖추게 될 것이라고 현장 관리자가 귀띔했다. 올림픽 스튜디오의 전성기 때 이곳에서 녹음된 곡들과 음반들은 지금도 로큰롤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다. 롤링 스톤스의 ‘Beggars Banquet’, 지미 헨드릭스의 ‘Are You Experienced’, 후의 ‘Who’s Next’, 퀸의 ‘A Night at the Opera’ 등은 이곳에서 녹음된 음반들의 일부일 뿐이다. 비틀스도 올림픽에서 ‘All You Need Is Love’ 곡을 녹음했다. 그러나 올림픽 스튜디오 하면 가장 중요하게 언급되는 밴드는 다름 아닌 하드록의 원조인 레드 제플린이다.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가 동료 기타리스트인 제프 백이 선물로 준 펜더 텔레캐스터 기타를 들고 녹음을 위해 올림픽 스튜디오를 처음 들어갔을 때 제플린은 정식 음반 계약도 하기 전이었다. 한정된 예산에 유료로 운영되는 스튜디오 안에서 긴 시간을 보낼 수 없었던 이들이 1집 녹음을 위해 스튜디오 내에서 보낸 시간은 고작 36시간. 음반 발매 직후 언론 평도 부정적이었다. 미국의 한 유력 음악전문지는 보컬 로버트 플랜트를 로드 스튜어트와 비교하면서 “목소리에 활기찬 맛이 없고, 이 밴드가 성공하려면 프로듀서부터 다시 찾아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몇 달 만에 기우로 나타났고 제플린은 결국 로큰롤의 역사를 웅장하게 다시 써내려가게 된다. 이후 이들은 올림픽 스튜디오에서 4장의 음반을 더 녹음했다. 레드 제플린 1집에 대해 악평을 쓴 위의 음악전문지는 수십 년 뒤 이 음반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로큰롤 음반 500선에서 29위에 올려놓았다. 모든 역사의 위대한 장면들이 항상 거창하게 시작된 것만은 아니다. 로큰롤 역시 예외는 아니다.
조현진 YTN 기자·아리랑TV 보도팀장을 거쳐 청와대에서 제2부속실장을 역임하며 해외홍보 업무를 담당했다. 1999~2002년 미국의 음악전문지 빌보드 한국특파원으로서 K팝을 처음 해외에 알렸다.
원문보기 :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353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