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디자인으로 읽는 한국인의 삶](5) 역사 격량따라 급변한 '돈의 얼굴' / 조현신(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교수 | |||
---|---|---|---|
ㆍ들어볼래요 내 얼굴에 얽힌 사연 돈은 종이 혹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물건이다. 그러나 배고플 때 먹을 수 없고, 메모지나 급할 때 화장지로도 쓸 수 없는, 아니 감히 쓰지 못해 사용가치는 없는 물건이다. “돈이 뭐길래”라는 말에는 이렇게 구체적인 용도는 없으면서도, 모든 것에 등급을 매기거나 관계를 좌우하는 그 힘에 대한 탄식이 들어가 있다. “돈은 귀신에게 맷돌도 갈게 한다”에서부터 “돈이 말하면 진실이 침묵한다”는 힘을 지닌 돈. 그 돈의 디자인에 대해 밉네 곱네 이야기하다 보면 힘든 우리네 심정이 조금이라도 유쾌해지지 않을까? 한국의 화폐는 한국은행에서 발행계획을 세우면, 그것에 들어갈 상징이나 초상 등은 국민 여론을 통해 선정하고, 조폐공사에서 디자인한 후 심의와 자문을 통해 결정된다. 화폐에는 액면가를 표시하는 숫자와 기호, 중앙은행 이름, 인장이나 서명이 꼭 들어가야 하며, 숨은 그림(워터마크)이나 홀로그램 등 위조방지 기술도 적용된다. 거의 모든 그림은 0.03㎜의 세밀한 선이나 정교한 도안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에서는 광복 후 78종의 화폐가 발행되었다.
동전, 열강 다툼의 공간
그럼 주화가 이렇게 바뀌는 동안 은행권은 어떤 격랑의 물결을 타고 있었을까? 1902년에 일본 제일은행이 발행·유통시킨 지폐에는 당시 일본인 총재 얼굴이 들어가 있기도 했다. 한일 강제병합 이후 1915년 조선은행에서 발행한 거의 모든 지폐에는 수명을 관장하는 수(壽) 노인상이 들어가는데 그 모델은 조선말기 외무대신이던 김윤식이라고 한다. 이 노인은 일본 정부의 오동나무 문양, 조선은행의 벚꽃 문양과 함께 1953년 사용 금지 때까지 38년 동안 조선인의 주머니를 쥐었다 폈다 하며 한반도를 돌고 돈다. 조선총독부의 모든 문서에 사용된 오동나무 문양은 일제강점기 내내 졸업장, 상장 등에 사용되었고 현재까지도 일본의 공식 정부 문양이다.
너무 고답적인 상징들과 인물상 한국 화폐에 들어가는 초상은 정부 표준 영정을 사용하고 있다. 이 표준 영정은 대부분의 화가들이 상상해 그리는 상상화이므로 위인들의 실제 모습은 아니다. 화폐 속의 초상이 문제가 되는 것은 세종대왕의 김기창, 이순신의 장우성, 신사임당의 김은호 등 이들 세 명이 모두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당연히 이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지난 5월 국회에서도 거론되었다. 하지만 친일 행적과 작품의 가치는 구분해서 봐야 한다는 의견 등으로 관련 법령 교체는 무산되었다. 윤리관, 공동체의 정서적 반응은 상관없이 재능만을 최고로 여기는 재능 만능주의가 드러나는 정치권의 결정이다.
하지만 한국을 상징하는 우리 화폐가 경제물로서의 자리를 넘어 문화물로서 인정받고,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예술적·현대적 화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는 없을까. 이를 위해선 이제 상징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와 그 사용방법에 대한 전혀 새로운, 그야말로 디자인적 본연의 자세가 필요하다.
원문보기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10302010035&code=9601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