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우리민족 최초 한류 발원지, 영천 조선통신사 길을 걷다 / 김용진(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겸임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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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 파견은 일정한 외교적 절차에 의해서 이루어 졌다. 먼저 막부의 명을 받은 대마도주가 관백승습고경차왜(關白承襲告慶差倭)라는 관백 승습을 알리는 외교사절단을 조선에 파견하고, 이어 통신사청래차왜(通信使請來差倭)이라는 통신사 파견 요청 외교사절단을 보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조선조정에서는 중앙관리 3인으로 구성한 정사, 부사, 종사관을 임명하고 최소 300명에서 최대 500명으로 사절단을 편성하였다. 1607년 1차 조선통신사는 정사 여우길(呂祐吉) 부사 경섬(慶暹) 종사관 정호관(丁好寬)을 비롯해 467명을 파견하였다. 당시 부사 경섬의<해사록(海?錄)>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해 뜰 무렵 대궐에 들어가 하직하니, 술과 말 안장, 정남침(定南針:나침반) 한 부(部)를 명하여 내려주었다. 먼저 장무역관(掌務譯官:우두머리 역관)으로 하여금, 서계(書契:외교문서)를 가지고 강가에 가서 기다리게 하였다. 오전 사시(巳時:9시)에 출발하였다.”고 되어 있다.
환벽정에 오르면 시인이 된다
가래실문화마을은 마을 전체가 야외 미술관
최초 한류 리허설이 펼쳐져진 조양각
김용진 작가 경북문인협회 회원, 디자인학 박사 출처:http://www.h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64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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