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암각화 속의 축제와 에어조던/조현신(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교수

스포츠 신발의 명품 브랜드 아디다스는 1993년을 마지막으로 독일에서 인건비가 싼 동남아로 공장을 옮긴 후, 2017년 이후 다시 독일로, 미국으로 돌아가고 있다. 현재 4차 산업혁명의 대표 아이콘으로 일컬어지는 스마트 팩토리라는 명칭으로 운영되는 아디다스의 공장은 직원이 10여 명이며, 신발 주문에서 생산까지 5일이면 된다고 한다. 아디다스는 개개인의 발에 맞는 완벽한 기능은 물론 소비자가 디자인을 선택하면 그것을 기반으로 완전히 커스터마이징된 신발을 만들겠다고 장담한다. 이 새로운 기술이 가져다 줄 개인 커스터마이징 디자인이라는 단어, 누구도 신지 않은,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신발을 만들어 제공한다고 하니 매력적으로 들린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밖에 없는 디자인을정말 좋아할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이름 없는 내가 수많은 중 하나를 선택했다고 누구 하나 나를 눈여겨보지 않을 것이기에, 여전히 나의 취향과 선택을 증명할 일종의 증명서가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을까? 내가 선택한 것을 다른 사람도 선택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유행이기에 우리는 유행을 안 좇을 수 없을 것이다. 스포츠계에서는 역시 나이키가 디자인 브랜딩 마케팅에서 광휘의 정점을 찍고 있다.

조현신

 

검은색의 건강한 피부에 시카고 불스의 붉은 유니폼, 강렬한 빨강과 선명한 흰색의 대비에 나이키의 로고인 스우시(swoosh)가 검은색으로 박혀 있는 에어조던 1

 

최초의 에어조던 1_ 브레드의 신화

나이키가 마이클 조던을 위해 1985년에 선보인 농구화는 강렬한 붉은색과 검은색이 조합된 파격적인 디자인이었다. 대부분 미국 프로농구(NBA)의 유니폼 규정인 흰색을 주조로 디자인된 이미지를 깬 이 디자인은 유니폼 규정을 어겼다고 판정받았다. 나이키는 5000달러의 벌금까지 감수하면서 조던에게 에어조던 1을 착용하게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또한 사실이 아니지만 이 붉은색 농구화를 신고 덩크슛을 날리던 조던의 모습은 감독 래리버드의 “신이 마이클 조던으로 변장했다”라는 언설을 끌어냈다. 검은색의 건강한 피부에 시카고 불스의 붉은 유니폼, 강렬한 빨강과 선명한 흰색의 대비에 나이키의 로고인 스우시(swoosh)가 검은색으로 박혀 있는 이 농구화는 순식간에 대중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그 후 에어조던 1은 블랙과 레드의 조합인 브레드로 불리면서 에어조던의 애장품 넘버원이 되었다. 이 시리즈는당대 최고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디자인되어 현재 에어조던 34까지 발매되었다. 나이키의 기술력 중 최강으로 꼽히는 것은 역시 발굽에 에어포켓을 넣고 그것을 보이게 한 기술이다. 이 공기 압축 기술은 나사의 우주 개발 기술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 이 공기 주머니를 아예 밖으로 보여 준 에어맥스 발매와 함께 나이키는 다시 한번 도약했다. 이렇게 기술과 마이클 조던의 스타성과 함께 급성장하지만 리복의 등장으로 위기를 맞게 되는데, 이때 슬로건 ‘Just do it’이나왔다. 나이키의 본산인 오리건주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마지막 유언을 묻는 집행관에게 “Let’s do it”이라고 말한 사형수 길모어의 말을 이용한 이 슬로건은 전 세계적 돌풍을 일으켰고, 나이키가 경쟁자 리복을 물리친 공신으로 추대된다. 그 후 ‘훈련이 힘들어? 그럼 지든가’ 등의 슬로건을 내놓았지만 ‘Just do it’만큼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이 슬로건은 현재 스우시 로고나 브랜드와 위치를 점하고 있다하지만 이런 성공과 기술의 승리, 스타의 밝은 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 시장만을 본다면 주 소비 타깃은 당연히 10대이고, 그것도 흑인 청소년들에게 조던이 주는 성공 메시지, 슬로건의 도전성 등이 어울리면서 브랜드 열풍이 과도하게 형성되었다는 평이 나오기도 한다. 자신의 저서 ‘No Logo’에서 다국적 기업 브랜딩전략의 폐해를 제기한 나오미 클라인은 “나이키 브랜드는 개인의자부심부터 아메리카 흑인 문화사, 정치적인 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대신하고 있다”라면서 나이키의 ‘침략적 마케팅’과 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심각한 부당 노동 행위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 영향으로 불매 운동이 실제로 거세게 벌어지기도 했다.

 

암각화 속의 축제처럼

하지만 이런 비판이나 항의와는 무관하게 나이키의 에어조던 시리즈는 발매될 때마다 젊은이들이 매장 앞에서 밤을 새우게 하며, 한정판으로 내놓고 추첨으로 팔아 컬렉터들이 애를 태우게 한다. 한국의 홍익대 앞 조던 숍에서는 해마다 에어 맥스가 발매되는 3월 24일에 팬들이 모여 서로의 신발을 자랑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축제를 벌인다. 하지만 이 정도는 이제 약과이다. 최근 흑인 래퍼 트래비스 스콧과 협력하여 발매한 에어조던 뒤축에는 스콧의 아이가 그린 얼굴 그림이 새겨져 있다. 포장지에도 인쇄되어있다. ‘신발색기’라는 신발 소개 유튜버 3명은 30분을 할애하여 이 신발의디자인, 즉 형태와 질감과 색과 끈 기능, 밑창의 우수함 등 수많은 디테일을 세세히 이야기하고 웃고 즐긴다. 그들은 웃고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세계 최고 흑인 래퍼의 삶, 그의 아이, 그와 조던의 성공 스토리 등 나이키의 신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이 신발의 가격은 360만 원이다. 이 외에도 신발 유튜버 ‘와디’는 2011년의 나이키 시리즈 중 조던 11 콩코드를 자신의 ‘영혼의신발’이라면서 역시 30여 분간 이 디자인의 색과 모양과 질감, 이를 둘러싼 매장 상황, 개인의 경험을 잡힐 듯이 이야기한다. 이들유명 신발 유튜버들의 영상은 조회수가 평균 3만 회를 넘어선다. 이런 현상은 이제 디자인이 더는 모양과 질감과 색채와 기능과, 그들이 빚어내는 단일한 존재성으로는 존재하지 못하는 것임을보여 준다. 나이키의 에어조던은 농구를 라이프 스타일로 만들었으며 디자인에 스토리텔링이 가미되고, 스타 숭배가 유포된 브랜딩 마케팅의 성공 신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4차 산업혁명의 또 하나의 개가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디자인과 브랜딩 자체를 능가하는 유튜버들의 이야기와 평가가 가미되면서오히려 그들이 선택하는 디자인이 ‘매우 좋은 디자인’으로 간주되는 상황이 되고 있다. 결국 아디다스의 패스트 팩토리가 생산하는 개인 커스터마이징 디자인과 더불어 이렇게 집단과 부족이 벌이는 브랜딩, 혹은 이야기 숭배 디자인 역시 지속될 것이다. 이는 먼 옛날 암각화에 새겨진 우리 조상들의 모습을 환기시킨다. 고래와 물고기와 동물을 잡고 축제를 벌이며 춤을 추던 암각화 속 그들의 모습. 긴 세월이 흘러 기본 생활 욕구가 충족된 그들의 후예가 이제는 디자인 제품과 그것을 만들어 낸 스타, 기업가, 성공, 그들의 아기들까지 이야기하면서 축제를 벌이는 것이다. 그리고예전의 그 생명을 건 사냥처럼 가장 저렴한 18만 원짜리 나이키 오리지널, 혹은 80만 원짜리 한정품과 자동 끈 묶음, 나이키와 대스타가 협업한 360만 원짜리 에어조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리품을 차지하기 위해 젊은이들은 자신의 노동과 시간과 노력을 바치면서 기꺼이 부족의 축제에 동참하는 것이다.

 

글을 쓴 조현신은 현재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대학원에서 디자인 역사와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 친근하고 낯익은 한국 디자인 역사를 연구하고 있으며, 특히 근대기에 형성된 한 국적 정서의 디자인화에 관심이 많다. 작년에 <감각과 일상의 한국 디자인문화사>를 출간했다.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 이 기사는 본교 소속 구성원이 직접 작성한 기고문이기에 게재하였습니다..

출처 : 월간 서울스포츠 | 2019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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