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6자회담의 유용성 / 이원덕(국제)교수
2004년 03월 18일 (목) 18:01

2월 말 베이징에서 개최된 제2차 북핵 6자회담은 적지 않은 진전을 이룩한 것으로 평가된다. 비록 이번 회담에서 북핵 문제를 속시원하게 해결하는 데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지난해 8월의 회담에 비해 상당한 가시적 성과를 일궈냈다. 물론 이 회담에서 북핵 문제의 해법을 둘러싸고 존재하는 북미 간의 근본적인 인식 차이가 여전히 불식되지 않았으며, 그런 의미에서는 여전히 답보상태를 면하지 못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의 판단으론 대체로 이번 회담을 계기로 향후 북핵 문제는 어느 정도 불확실한 국면을 넘어서 대화에 의한 평화적 해결이라는 목표를 향해 순항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도 6자회담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제도적인 틀로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는 점은 평화적 해결을 향한 가장 큰 청신호라고 간주된다. 2/4분기 내 제3차 회담의 개최에 대한 원칙적인 합의와 차기회담 준비를 위한 6개국 간 실무그룹 구성을 명시한 의장성명이 채택되었다는 것은 향후 6자회담이 상설화, 제도화로 이행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 6자회담의 틀이야말로 북핵 문제의 해결은 물론이고 향후 한반도 평화의 제도화, 더 나아가 동북아 지역의 안정과 공동번영을 추구하기 위한 대화의 포럼으로 매우 유용하게 기능할 것으로 기대하며 또한 그렇게 되도록 최대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북핵 문제의 핵심은, 핵 개발을 통해서라도 안전보장을 담보하려는 북한과 절대로 핵개발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결사적인 힘겨루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얼핏 보면 북미 간 담판이야말로 북핵 문제의 가장 바람직한 해법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 때 북미 양자 간에는 대화와 협상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신뢰와 이해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미국의 대북정책 집행자의 다수는 북한을 지구상에서 없어져야 할 ‘악의 축’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북한의 지도부 또한 미국을 자신의 생존을 압살하려는 ‘악마의 제국’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인식을 가진 양자가 서로 만나 협상을 벌인들, 원만한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이다.

만약 올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존 케리 후보가 집권한다면 사정은 조금 나아지겠지만 그가 집권한다고 해도 미국이 가진 기본적인 대북 인식 및 대북정책의 목표 자체가 크게 수정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존 케리 후보는 다자적 접근을 추구하고 있는 부시 정권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면서 북한과의 직접 양자대화를 통한 해결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로서도 다자회담이 가진 유용성을 완전히 무시하긴 어려울 것이다.

6자회담의 틀은 극도의 불신을 가진 북미 상호간의 극단적인 충돌을 완화하면서 양자 간 대화의 지속을 가능하게 하는 유효한 장치가 될 수 있다. 두번에 걸친 6자회담에서 북미 양국이 공식적인 6자간 회담과는 별도로 의미 있는 양자 간 대화를 활발하게 전개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한 양자회담과는 달리, 다자회담에서는 어느 일방의 독선적인 일탈 행위가 나머지 참여국의 감시기능으로 말미암아 어느 정도 억제될 수 있으며, 다자간의 합의 및 약속은 국제적 규범으로서 더 강한 구속력을 가질 수 있다는 강력한 장점이 존재한다.

북핵 문제는 북미간의 이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지역 전체의 생존과 안전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이다. 또한 동북아지역의 미래적인 공동 과제인 지역공동체 형성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최대 악재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동북아의 주요 국가가 북핵 문제의 해결과정에 책임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긴급 현안인 북핵 문제 해결이 6자회담의 단기적 과제임에는 틀림없으나, 장기적으로는 장차 한반도 평화의 영구적 제도화, 동북아의 안전과 평화 그리고 이 지역의 공동번영을 촉진하기 위한 다자간 대화의 건설적인 장으로서 6자회담의 틀이 더욱 활성화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원덕/국민대 국제학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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