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이기고 싶다면… 승자처럼 가슴 펴고 당당히 코스를 걸어라 / 최우열(스포츠교육학과) 겸임교수


- 행동이 자신감에 미치는 영향

하버드大 심리학자 연구 결과
꼿꼿하게 자세 취한 사람들
남성호르몬 수치가 올라가고
구부정한 사람들은 떨어져

침팬지도 이기면 가슴 내밀어
긍정적 정서 향상 과학적 입증

영국 하트퍼드셔대 교수인 리처드 와이즈먼은 학계에서 괴짜 심리학자로 통한다. 마술사 출신이라는 경력도 이색적이지만 기상천외한 실험과 연구로 유명하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2006년 전 세계 32개국 주요 도시의 도심에서 60피트(약 18m)를 걷는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한 연구다. 이른바 ‘삶의 속도(pace of life)’를 알아보기 위한 것으로, 걸음 속도로 사람들의 삶을 비교한 연구였다. 측정 결과에 따르면 싱가포르가 10.55초로 걸음 속도가 가장 빠른 도시였고, 남아프리카 말라위의 최대도시인 블랜타이어가 31.60초로 가장 느렸다.

아쉽게도 한국은 조사 대상국에서 빠져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로 인해 아시아 국가인 1위 싱가포르, 4위 중국 광저우(10.94초)와 비슷한 수준이 아닐까 싶다.

흥미로운 사실은 1999년 31개국을 대상으로 진행한 또 다른 연구와 비교하면 평균 보행 속도가 0.8초가량 더 빨라졌다는 점이다. 경제적으로 발전할수록 삶은 더 각박해진다는 역설을 잘 보여주는 결과다. 실제로 걸음 속도가 빠른 국가일수록 소득수준은 높지만, 심장질환으로 인한 사망률과 흡연율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으로 경쟁이 심하고 시간에 쫓겨 그만큼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기 때문이다.

이처럼 걸음 속도와 같은 인간의 무의식적인 행동이나 몸짓은 내면의 심리적, 정서적 상태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육상에서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하거나, 일 대 일 대결에서 이긴 선수가 자신도 모르게 양손, 머리를 번쩍 치켜들면서 가슴을 내미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다. 승리로 한껏 고양된 마음속 자부심과 자신감을 밖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무의식적 표현이다.

반면 경기에서 패하거나 큰 실수를 했을 때 선수들은 수치심에 머리를 손으로 감싸거나 고개를 숙이고, 몸을 웅크리는 동작을 한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같은 인간의 행동은 사회적인 학습이나 모방으로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이미 갖고 태어나는 것이다. 이 같은 동작을 한 번도 보거나 배운 적이 없는 선천적 시각장애인 선수들도 비슷한 동작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징은 인간뿐 아니라 동물의 세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두머리 수컷 침팬지는 싸움에서 이기거나 자신의 힘을 과시할 때 머리를 치켜들고 가슴을 앞으로 내밀거나 양손으로 가슴을 두드린다. 반대로 싸움에서 패하거나 힘이 약해 밀린 침팬지들은 고개를 숙여 복종을 표현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같은 생각이나 감정, 무의식적인 행동 사이의 관계가 반대 방향으로도 나타난다는 점이다.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 윌리엄 제임스는 1890년 자신의 책 ‘심리학의 원리’에서 감정이란 행동과 같은 자기 자신의 반응을 관찰함으로써 경험하게 되는 일종의 결과물이라고 주장했다.

즉 보통은 무서운 것을 보고 공포감을 느끼게 돼 달아난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무서운 것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도망치면서 공포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우울증 환자 중 어깨를 움츠리거나 등을 굽히는 등 자세가 구부정한 사람이 많다. 2014년 뉴질랜드 오클랜드의대 연구진은 우울증 환자들의 이 같은 특징에 주목해 일반인을 두 집단으로 나눠 각각 꼿꼿한 자세와 구부정한 자세를 취하게 했다. 그런 다음 스트레스 상황에서 두 집단의 자존감과 우울감을 측정했더니, 꼿꼿한 자세 집단이 구부정한 자세 집단보다 자존감과 긍정적 정서가 더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하버드대의 심리학자 에이미 커디의 연구에서도 가슴을 펼치는 등 당당한 자세를 취한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거나 몸을 웅크린 사람들과 비교해 남성호르몬 수치가 올라가고 스트레스 호르몬이 감소해 더 자신감 있게 행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소 연습장에서는 잘하다가 정작 라운드, 경기에선 기가 죽거나 자신감 저하로 죽을 쑤는 골퍼들은 이러한 연구 결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임스는 어떤 성격을 원한다면 이미 그런 성격을 지닌 사람처럼 행동하라고 설파했다. 경쟁에서 이기고 챔피언이 되고 싶다면, 마치 자신이 승리자이고 챔피언인 것처럼 가슴을 펴고 당당한 자세와 걸음걸이로 코스를 걸어보라. 한결 높아진 자신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국민대 골프과학산업대학원 교수
스포츠심리학 박사

원문보기: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103001032439000003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 이 기사는 '뉴스콘텐츠 저작권 계약'으로 저작권을 확보하여 게재하였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