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고이즈미의 안타까운 집착 / 이원덕(국제)교수
2004년 04월 15일 (목) 20:37

지난주 일본의 후쿠오카 지방법원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가 위헌이라는 전격적인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그간 일본 내외의 논란을 일으켜 왔던 야스쿠니 문제가 새로운 차원을 맞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참배에 항의하는 소송은 후쿠오카 외에도 6개 지방법원에 제기되었는데, 이 중 오사카와 마츠야마 지방법원이 소송기각 결정을 내린 것과 비교하면 이번 판결은 획기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 판결이 여타 지방법원은 물론 향후 전개될 상급심의 재판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보수색채가 강한 일본 사법부에서 나온 이례적인 판결로 말미암아 야스쿠니 문제가 다시금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할 조짐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판결 직후 “개인적 신조에 따라 참배하는데 왜 헌법에 위반되는지 모르겠다” 며 앞으로도 참배를 계속하겠다고 공언했다. 자민당의 아베 신조 간사장도 이 판결에 대해 “지방법원의 판결에 불과하다”고 애써 그 의미를 축소해석 하였다. 지방법원의 판결이 상급심을 거쳐 최종 판정으로 나오기까지는 적어도 5~10년 정도의 기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판결이 당장 고이즈미 총리의 행동을 제약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판결을 계기로 야스쿠니 참배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비판의 목소리도 한층 거세지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당장 연립정권 파트너인 공명당은 야스쿠니 참배가 위헌 소지가 있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고 야당인 민주당 또한 위헌 소지가 있는 총리의 공식참배는 삼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일본의 일간신문 중 <산케이>와 <요미우리>는 총리의 야스쿠니 공식 참배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논조의 사설을 내보냈지만, 나머지 <아사히>, <마이니치>, <니혼게이자이> 등 대부분의 유력 신문은 총리의 야스쿠니 공식 참배가 적절치 못함을 지적하는 논조의 사설을 게재하여 일본 사회가 이 문제를 둘러싸고 양분되어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곰곰이 따져보면 이번 판결은 공인의 야스쿠니 공식 참배가 정교 분리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법적 판단만을 적시한 것일 뿐, 야스쿠니 참배가 초래하는 역사적, 외교적 차원의 문제에는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즉, 정교 분리의 문제와 더불어 총리 및 각료의 야스쿠니 신사참배가 갖는 더 심각한 문제는 그 행위가 갖는 역사성 및 상징성에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야스쿠니 신사는 전쟁 전 일본의 육해군 장병 전사자를 추도하기 위한 군의 기구였으나 전후 정교 분리를 채택한 헌법에 의거하여 국가로부터 분리되어 종교 법인이 되었다. 야스쿠니 신사는 실제로 해외 침략에 나선 구 일본군 시설의 일부였으며 그런 의미에서 침략전쟁의 상징물임에 틀림없다. 더욱이 1978년 사형 혹은 옥사한 A급 전범 14명이 우익세력에 의해 몰래 야스쿠니에 합사되었고, 그 후 우익세력은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력하게 요구해 왔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전후 최초로 야스쿠니 신사에 공식 참배하였으나 중국, 한국 등의 반발을 고려하여 이후로는 참배를 단념하였다. 일본유족회 회장을 역임했던 하시모토 전 총리는 우익세력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생일날 참배하여 비판을 받자, 역시 그 후로는 참배를 중지하였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는 야스쿠니 참배를 3년째 4번에 걸쳐 계속하고 있고 향후에도 참배를 단념할 생각이 없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의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집착은 일본의 국익을 위해서도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서도 백해무익하다. 중국이 야스쿠니에 공식 참배를 고집하는 고이즈미와는 대화를 못하겠다고 단호하게 나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야스쿠니 신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합리적인 대안은 이미 일본 내에서도 충분한 검토를 거쳐 대안이 제시된 바 있다. 그것은 야스쿠니 신사 대신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와 같은 전몰자 위령시설을 별도로 건립하는 안이다. 그러나 고이즈미 정권은 우익과 자민당 지지자들의 눈치를 살피며 그러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개탄스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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