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윤영오(정외) 국제정치학회장 25일 학술회의 주관
“韓美동맹 심각한 위기 우호적 결별 준비해야”

[조선일보 2005-03-26 03:27:02]

국제정치 학술회의, 美학자들 문제제기

한국 국방부가 후원한 25일 한국국제정치학회 학술회의는 미국과 한국 학자의 ‘충돌’로 불릴 만했다. 미국측 패널은 최근의 사례를 들어가며 ‘한·미동맹은 위기’라고 했고, 한국 학자들은 “변화된 환경을 인식해야 한다”고 했다. 발표자로 나선 데니스 핼핀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 전문위원은 한·미동맹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다. 그의 발표문 제목부터가 ‘위기의 동맹―미·한 관계에 대한 현재 미국 의회의 시각’이었다.

핼핀 위원은 “노무현 대통령이 LA에서 ‘북한 핵보유가 자위용이라는 데 일리가 있다’고 한 발언으로 미국 의회가 깜짝 놀란 일이 있다”며 “북한이 느끼는 위협만 정당하고 9·11테러 후 미국이 느끼는 위협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동맹의 미래를 재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한국에서는 납북된 김동식 목사의 행방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며 “3월 8일 해스터트 하원의장이 김원기 국회의장에게 김 목사 문제를 제기했지만 아무 대답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핼핀 위원은 최근 ‘한국의 주적이 누구냐’라는 공개 질의로 한국 정부·여당의 반발을 낳았던 헨리 하이드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의 특보이기도 하다. 하이드 위원장은 한국 문제에서 그의 말을 경청하며, 최근 주적발언도 핼핀 위원의 조언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핼핀 위원은 우리 국방백서에서 ‘북한=주적’이 삭제된 것과 관련, 지난 4일 “한·미 간에 어떤 단절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고, 그 후 하이드 위원장도 “한국은 적과 동지를 구분하라”고 말했었다.

미국 내 보수적 연구단체인 케이토(Cato) 연구소의 더그 밴도(Doug Bandow) 선임연구원은 “한국은 미국의 안보공약에 무임승차한 대표적 국가”라고 했다. 밴도씨는 “한국이 누리는 무임승차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한국이 너무 적게 지출하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이 지출하는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이라며 “분명히 미국이 전쟁을 해야 할 때가 있지만 한국은 미국에 막대한 비용과 희생을 쏟아부을 만큼 사활적(死活的) 이익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말미에 “한·미 양국은 우호적인 결별을 준비해야 한다”고도 했다.

토론자로 나선 경희대 임성호(林成浩) 교수는 “탓하기(blaming game)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임 교수는 “한국의 노력 못지않게 미국측도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중앙대 김태현(金泰泫) 교수는 “여러 면에서 혼란스러운 게 사실”이라며 “한국민이 겪어 온 식민지 지배와 전쟁의 상흔을 심도 있게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학술회의가 이렇게 진행되자 한국의 정치학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 교수는 “학회를 많이 해 봤지만 오늘처럼 거친 표현을 들은 적은 없다”고 했다.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윤영오 국민대 교수는 회의 후 인사말을 통해 “이견이 많이 노출됐지만 ‘한·미동맹이 서로에게 중요하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할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안용균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ag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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