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책과 사람] ‘숲이 들려준 이야기’ 저자 김기원교수

[국민일보 2004-10-21 16:42]


1800년 여름,청각장애로 고통받던 서른살의 베토벤은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산촌마을 하일리겐슈타트로 요양을 떠났다. 자살하기 위해 유서를 썼을 정도로 극단적인 절망감에 사로잡혔던 베토벤은 맑은 공기와 울창한 숲 덕분에 건강을 되찾고 새로운 다짐과 함께 창작활동을 재개했다. 베토벤이 1808년 완성한 제 6번 교향곡 ‘전원’은 삶의 의지를 일깨워준 하일리겐슈타트 숲에 대한 찬가다.

숲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자 마음의 휴식처였다. 슈베르트는 ‘위안’이나 ‘숲에서’처럼,숲을 찬미한 아름다운 가곡들을 남겼고 시벨리우스는 교향시 ‘타피올라’에서 조국 핀란드의 짙은 원시림을 노래했다. 괴테나 실러같은 대문호들은 숲을 창작의 중요한 모티브로 삼았고 철학자들은 숲 속에서 사색의 씨앗을 키웠다. 서양의 풍경화와 동양의 산수화를 낳은 것도 숲이었다.

‘숲이 들려준 이야기’(효형출판)는 ‘신화와 예술로 만나는 숲의 세계’라는 부제처럼 신화와 종교,음악과 미술,문학과 철학 등 예술과 학문의 전방위에서 숲의 의미와 흔적을 짚어보는 책이다.

저자인 김기원(48) 국민대 교수는 “풍족한 생활 환경 때문에 숲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 사람들에게 숲의 가치와 의미를 일러주고 싶어 책을 썼다다”고 말했다. 책을 통해 한 사람이라도 더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는 데 동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김 교수는 고향인 충남 당진의 뒷산에서 뛰놀던 기억을 지금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는 봄의 진달래,오뉴월의 새소리,가을의 도토리와 함께 꿈을 키운 세대다. 꽃과 풀을 좋아해 초등학생 때부터 원예사가 되는 게 장래희망이었던 그는 작은 식물보다 큰 나무를 공부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산림자원학과에 진학했다. 산림공학을 배우기 위해 오스트리아의 빈 농과대학에 유학하던 시절,그는 대학교정의 한 동상에 새겨진 ‘숲 없이 문화 없고 문화 없이 숲 없다’는 문구를 만난 뒤 숲과 문화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숲은 단순히 개개 나무로 구성된 유기체 집단이 아닙니다. 숲을 통해 의식주를 해결하고 목재같은 자원을 얻었으니 물질문명을 가능케 한 것은 숲입니다. 숲은 인류에게 정신적·문화적으로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지요. 시,소설,동화,신화,음악,건축,미술 등에서 숲과 관련맺지 않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지요”

김 교수는 대학에서 산림미학과 산림공학을 가르치는 동시에 우리 숲을 살리기 위한 활동에도 열심이다. 산림자원학과 교수들이 주축이 돼 1992년 결성한 ‘숲과 문화 연구회’의 회장을 작년부터 맡아 격월간지 ‘숲과 문화’를 발간하는 한편 학술토론 및 일반인들을 위한 숲탐방 행사를 정기적으로 조직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화인 무궁화처럼 우리 겨레의 상징인 소나무를 국목으로 지정하기 위한 사회운동에도 착수했다.

송세영기자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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