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8일부터 '조선의 싸인'展(국민대 박물관)
사인(서명)은 서양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오랜 전통을 지닌 문화이다.


서양에서 주로 귀족들이 썼다면, 조선시대에는 국왕과 천민,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 즐겨 사용했다.


문자의 조형성과 상징성을 살린 서명은 결재, 공증, 소유를 상징하는 문자 신분증이면서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보여주는 작품으로서도 손색이 없었다.


서명문화가 크게 발전했던 조선시대의 서명들을 한 자리에 모은 ‘조선의 싸인’전시회가 8일부터 12월10일까지 서울 성북구 국민대 박물관에서 열린다.


국왕과 관료, 선비들이 공문서와 서화류에 사용했던 서명을 비롯, 글자를 모르는 계층이 손바닥이나 손가락을 그려넣은 원시적인 수촌(手寸)이나 수장(手掌) 등 100여 점을 살필 수 있는 기회이다.


서화류와 공문서에 사용된 서명은 크게 본인의 이름글자를 변형한 서(署)와 이름 외의 특별한 글자를 변형한 압(押ㆍ수결)으로 나뉜다.


‘서’는 지위가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에게 정중한 예의를 갖춰 올릴 때, ‘압’은 지위가 높은 사람이 아래 사람에게 결재 문서를 내릴 때 사용했다.


영의정을 지낸 한명회(韓明澮ㆍ1415~1487)의 서는 이름을 정확하고 세련되게 적어넣은 게 특징. 상단 부분에 ‘明’자를 작게, 하단에 ‘澮’를 크게 적어 한눈에 누구의 서명인지를 알아볼 수 있다.


또 정창손(鄭昌孫ㆍ1402~1487)과 김성일(金誠一ㆍ1538~1593)이 이름을 초서체로 변형하여 사용한 서는 조형미가 탁월하다.


압에서는 일심(一心)과 참을 인(忍)자가 주로 사용됐다.


일심은 오직 한 마음으로 사심 없이 결재한다는 의미이고, 인은 남을 배려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문화예술을 중흥시킨 정조의 ‘일심’ 수결은 장중한 느낌의 회화 같고, 인조 때 한 관리의 압은 새의 날렵한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전시에는 태조 이성계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100여명의 서명을 적어넣은 패널도 나온다.


이밖에 도량형에 찍혀 있는 관리들의 수결을 비롯, 여성들이 문서에 손바닥과 손가락을 그려넣거나 찍어넣은 서명, 도자기와 기타 생활용품에 있는 서명 등도 두루 선보인다.


박길룡 국민대 박물관장은 “우리 선조들의 예술감각과 멋을 엿보면서, 조선시대의 생활문화를 또 다른 각도에서 조망할 수 있도록 전시를 꾸몄다”고 말했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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