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대담>학벌주의 어떻게 넘을까 / 김동훈(법대학장): 정진상(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장)

[한겨레 2004-12-07 08:00]



수능 부정으로 학생들이 줄줄이 덜미를 잡힌 지난 주, “너희도 피해자”라는 ‘동정’과 “너희 때문에 다른 학생들이 피해본다”는 ‘분노’의 시선이 얽혔다. 두 시각 모두 공유하는 건 한국 사회에서 학벌과 대학입시가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인식이었다. <한국의 학벌, 또 하나의 카스트인가>를 쓴 김동훈(45) 국민대 법대학 학장과 <국립대통합네트워크-입시 지옥과 학벌 사회를 넘어>를 낸 정진상(46)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장이 지난 2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나 학벌주의를 해결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학벌주의 문제 있다’는 덴 한 목소리였지만 제시한 해결 방법은 반대였다. 김 교수는 국립대를 민영화해 공정하게 경쟁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정 교수는 적어도 국립대를 평준화해 공공성을 살려야 한다고 밝혔다.


김동훈 - “국립대 민영화해 공정경쟁 허가해야”
정진상-“국립대 평준화해 공공성을 살려야” 몰랐다. ‘학벌 없는 사회’와 ‘학벌 없는 사회 만들기’는 다른 단체였다. 김 교수는 ‘…만들기’의 사무처장을 맡고 있고, 정 교수는 ‘… 사회’와 주장이 같았다. 헷갈려서 두 단체에 잘못 전화했다가 무안했다. 토론회 장소에 나타난 두 사람은 차림부터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김 교수는 깔끔한 양복이었고 정 교수는 개량한복을 입고 있었다. 정진상=보통 수능 부정이 광범위하게 벌어진 원인으로 크게 두 가지를 지적합니다. 하나는 객관식 시험이지요. 다른 하나는 단판 승부라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19살에 치르는 객관식 수능시험 한번으로 모든 게 결정이 나니 학생도 학부모도 모든 수단을 동원해 거기해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김동훈=이번 수능 부정 사태는 결국 대학 입학을 국가가 관리하는 체제의 한계가 드러난 거라고 봅니다. 대학 입학은 기본적으로 지원자와 대학 사이의 사적인 계약이라는 점을 분명히해야 합니다. 사적인 계약에 국가가 간섭할 필요가 없죠.

정=입시 무한 경쟁의 구조적인 요인를 분석해야죠. 한마디로 대학 서열 체제가 문제입니다. 200여개 대학들이 서울대를 정점으로 연고대, 수도권대, 지방대, 전문대 이런 식으로 획일적인 서열을 이루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60만명 학생들이 무한 경쟁을 할 수밖에 없죠. 입시 방법의 개선만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젭니다.

김=학벌주의를 지적하시는 것 같습니다. 특정 대학 입학이 출세를 보장하는 맹목적인 신념 말입니다. 흔히 학벌주의를 간판주의니 서열주의니 파벌주의라고 비판합니다. 그런데 사실 간판을 보고 평가하는 것은 어느 정도 물리적으로 불가피한 면이 있어요. 명문 대학에서 4년 동안 명문답게 교육시켰을 것이라고 믿어주는 겁니다. 서열도 어느 사회나 민간의 자율적인 경쟁 체제에 맡겨두면 생기게 마련입니다. 파벌은 폐해가 심합니다만 같은 대학 나와 더 친밀하고 그룹을 이루는 건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 학벌주의 문제를 의식 개혁 차원에서 근본주의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호소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요.

정=학벌주의와 능력주의는 구분되어야 해요. 우리나라의 학벌주의는 미국과도 굉장히 다르죠. 미국에서 하버드를 나와 인정받는 정도와 우리나라에서 서울대를 나와서 인정받는 정도는 다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학벌은 대학에서 얼마나 좋은 교육을 하느냐와 연관되는 게 아니라 입학 당시 성적에 따라 규정되죠. 예를 들어 지방국립대와 서울의 사립대를 비교하면 학교 시설은 물론이고 교수질도 지방국립대가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게 객관적으로 나타났는데도 서울에 있는 사립대의 학벌이 높게 평가되죠. 물론 학벌이 현실로 존재하는 한 의식 개혁으로 학벌주의를 타파하기는 힘들죠. 학벌을 생산하는 대학 서열 체제 자체를 제도적으로 바꾸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김=학벌주의의 근본적인 기반이 대학의 서열체제라는 진단엔 동의합니다. 하지만 유럽처럼 대학이 공립 체제가 아니라면 미국이나 일본에서처럼 서열이 생기는 건 자연스럽죠. 그런데 우리의 경우 문제가 되는 건 서열이 고착화돼 있다는 겁니다. 해방 뒤 50년 동안 크게 변하지 않고 서울대 인기 학과를 정점으로 피라미드를 이루고 있죠. 분야별로 나눠진 것도 아니고 대학이 하나의 브랜드가 됐어요. 대학별 학과별로 지나치게 세분화돼 예각의 피라미드를 만들고 있는 거죠. 유수한 사립대에 진학하고도 서울대에 가려고 재수도 해요. 대학 서열 체제 자체가 문제라기 보다 서열 체제를 긍정적인 것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거예요. 고착화된 서열을 대학들의 노력을 반영한 유동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미국은 매년 평가에 따라 분야별로 순위가 변해요. 막연한 브랜드가 아니라 분야별로 특화되어야 해요. 예각의 피라미드를 최소한 사다리꼴로 완화해서 미국의 아이비리그처럼 일종의 그룹별로 명문군을 형성해야 합니다. 그래야 입시경쟁도 완화돼요. 지금은 상위권 학생들이 서울대만 바라보는데 만약 10개 대학이 큰 격차 없이 경쟁한다면 경쟁의 압력은 10분의 1로 낮아질 겁니다.

정=명문군을 만든다고 하셨는데 서울대를 민영화 하더라도 서울대 학벌이 계속 유지될 것이고 그러면 명문군이 형성될 수도 없지요.

김=서울대가 압도적 1등인 건 국가의 지원 때문이죠. 유수한 사립대 사이의 차이는 서울대와 연고대의 차이에 비하면 그리 크지 않습니다. 공정한 경쟁의 장만 마련된다면 다수의 사립대 사이에서 활발한 경쟁 체제가 만들어지리라고 믿습니다.

정=대학 서열을 유동적으로 만드는 방식으로는 입시경쟁을 줄일 수 없습니다. 서열 문제를 불가피하다고 그 개혁을 포기하면 우리나라에서 입시경쟁은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어요. 서열 체제 자체를 제도적으로 완화 내지 폐지하는 방식을 강구해야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대학 서열이 획일적이고 극심하게 나타나는 원인에 대한 분석이 필요해요. 저는 한국 현대사의 특수한 경험에서 비롯됐다고 봐요. 하나는 일본 식민지 경험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전쟁이죠. 일본 식민지 때 신분제도가 완화되고 일제가 마련해 놓은 고등교육 체제에 누구라도 진입할 수 있는 형식적 기회가 보장되었지요. 물론 실질적으론 봉쇄돼 있었지만요. 그러다 해방 뒤 교육수요가 폭발했어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대학이 공부하는 곳이라기 보다는 계층 상승의 통로, 출세의 수단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됐죠. 대중이 자신들의 삶을 향상시키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기존 서열 체제를 그대로 둔 채 개인적으로 상층으로 올라가는 거고 다른 하나는 사회구조를 바꿔 좀 더 평등한 사회를 같이 만드는 거죠. 그런데 해방 직후 미군정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집단적인 방식으로 다시 말하면 사회 운동을 통해 사회를 평등하게 만드는 길이 완전히 봉쇄 당하게 됐어요. 개인들이 대학 입학이라는 자격증을 취득해 계층 상승을 하는 통로만 열려 있었죠. 이것이 엄청난 교육열로 나타났어요.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대학 서열 체제는 이렇게 해서 형성된 것이죠.

김=정 교수님 말씀은 지나친 교육열의 원인에 대한 설명은 되는데 대학 서열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설명으론 부족한 것 같습니다. 원인은 말씀하신대로 일제의 유산이죠.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관리체제라고 할 수 있어요. 일본은 근대화를 수행할 관리를 양성하기 위해 국가가 직접 대학을 세웠죠. 서울대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도 그렇게 만든 겁니다. 제국대학령 1조를 보면 ‘대학은 국가의 수요에 부응하는 학술과 기예를 양성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돼 있어요. 1918년 사립학교를 허가했지만 국립 우위 체제에서 사립의 구실은 활발하지 못했어요. 이러한 일본식 고등 교육 관리체제가 그대로 우리나라에 이식됐어요. 국립서울대학, 지방국립대학은 국가가 책임져 주니까 자연스럽게 정점에 서게 되고 이를 모델로 그 밑에 사립대가 피라미드로 서게 된 거죠. 자연스런 경쟁에 맡겨두면 서열이 고착화되기 힘들죠. 우리나라 10대 재벌 가운데 50년 전부터 살아남아 온 건 거의 없어요. 재벌은 그렇게 부침이 심한데 대학 서열은 왜 그렇게 오래 유지될까요? 국가 관리체제라는 외부의 힘 때문이죠. 국가 관리체제가 허물어지고 경쟁이 이뤄지면 고착된 서열은 유동적으로 바뀔 거예요.

김동훈 -“셔울대 국립의 모자 벗기면 실력있는 교수들 사립대로 갈것”
정진상 - “서울대 학부강의를 개방해 많은 대학을 서울대로 만들자는 것” 정=국가의 관리체제가 서열 체제를 만들었다고 하시는데 그건 원인이라기보다 매개라고 봐야죠. 매개가 없어지더라도 원인이 남아있으면 서열이 계속될 겁니다. 서열이 있으면 유동적이건 고착돼있건 입시경쟁이 있기 마련이죠. 대학서열이 형성된 데는 사회 불평등이라는 구조적 원인이 있습니다. 또 학벌주의 자체가 대학 서열 체제을 생산하고 있죠. 처음에 서울대가 최고의 대학으로 자리 잡는 데 국가가 매개 구실을 한 건 틀림 없지만 그 뒤에는 서울대 동문과 서울대 자체가 다시 학벌을 재생산하고 있어요. 서울대와 연대, 고대의 경쟁 조건을 동일하게 만들더라도 이미 서울대라는 학벌이 있기 때문에 서열이 유동화되기 힘들어요. 몇몇 사립대가 좋은 대학을 만들어보려고 집중 투자를 했지만 실폐한 사례가 이를 증명 한다고 볼 수 있지요. 고착된 학벌주의 때문이죠. 서울대에 학생이 몰리는 건 국립대라서 등록금이 싸기 때문이 아니에요. 우리나라 대학 서열 체제는 전체로 작동하고 있어요. 서울대 다음엔 부산대가 아니라 연고대가 돼 있다는 거죠. 지방의 모든 국립대가 수도권대 아래 서열이 됐고 거기엔 1970~80년대 서울의 경제 집중이 한몫을 했죠.

두 사람은 학벌주의의 원인을 바라보는 시각부터 달랐다. 김 교수는 국가 개입이 자율 경쟁을 방해해 대학 줄 세우기에 한몫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반해 정 교수는 지금은 학벌 자체가 서열을 재생산하고 있고 이를 완전히 흔들지 않고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거라고 진단했다. 김=전국 단위로 서울대가 정점에 서는 것과 지역 단위로 지방국립대가 맏형이 되어 지방사립대를 거느리는 것은 국가 관리라는 동일한 원리가 작동하는 거죠. 지역 단위로 보면 지방사립대가 발전 못하는 건 지방국립대가 위에 군림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지방사립대 교수들을 만나면 국립대는 왜 등록금을 덤핑하느냐고 불만을 말하기도 해요. 그렇다고 국립대가 다른 구실을 하는 건 아니고 동일한 경쟁관계인데 말입니다. 일종의 불공정 경쟁을 한다는 거죠.

정=현재 대학 서열 문제의 핵심이 뭔지 살펴야죠. 서열 체제의 핵심은 서울대 문제와 지방대학의 몰락이에요. 지방은 국립대나 사립대나 도토리 키재기입니다. 지방의 모든 인재가 서울에 집중하고 있어요. 서울에는 국립대가 하나밖에 없고 나머지 국립대는 다 지방에 있는데도 서열은 서울 중심으로 형성돼 있어요. 국립대, 사립대 사이의 서열은 부차적이고 더 주도적인 건 서울대, 연·고대, 수도권대라는 서열입니다.

김=국립의 사립에 대한 우위와 수도권의 지방에 대한 우위라는 두 가지 요소로 대학 서열은 결정 되고 있어요. 서울대가 압도적인 건 두 요소의 중첩 다시 말해 서울에 있는 국립이기 때문이죠.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 문제도 중요한 문젭니다. 이건 기본적으로 국가의 정책 과제입니다. 국토 균형발전이라는 큰 문제죠. 서울대가 연고대의 우위에 서는 이유는 국립의 모자를 쓰고 있기 때문이에요. 국립대학을 독립법인화하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 국가가 손을 떼라는 이야기죠. 국립의 모자를 벗기면 서울대의 실력있는 교수들이 자연스레 유수한 사립대로 스카우트되어 갈 겁니다. 우수한 교수가 나가버리면 서울대의 위상이 유지될 수 없죠.

정=사물을 기계적으로 분리해 이 측면에선 이런 우위가 있고 저 측면에선 저런 우위가 있다고 나누어 보면 진짜 현실을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죠. 사물은 총체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학벌주의가 문제의 핵심이지요. 이를 해결하는 데는 상·중·하책이 있을 수 있습니다. 상책은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학력과 관계 없이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거겠죠. 하지만 이건 너무 먼 이야기라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보긴 힘들죠. 중책은 학벌사회를 능력사회로라도 바꾸는 방법을 찾을 수 있어요. 지금은 대학 입학 성적으로 졸업이 보장되고 봉건시대 신분 증명처럼 평생을 따라다니죠. 단 한번의 시험으로 개인의 운명이 좌우되니 능력을 발휘할 수가 없어요. 이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제기된 게 대학평준화, 국립대통합네트워크죠. 마지막으로 하책은 현재 대학 서열은 그대로 두되 고교평준화를 통해 내신성적으로 입학생을 뽑는 방법입니다. 이 세 가지 방법 가운데 가장 현실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건 두 번째 중책이라고 봅니다. 지금까지 교육부가 36차례 입시제도를 개선했지만 전혀 성과를 거둘 수 없었는데 저는 이를 무대책이라고 봅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전혀 건들지 못했으니 입시부정까지 벌어진 거죠.

김=국립대통합네트워크라는 발상은 고등교육을 실패가 뻔히 예견되는 사회주의적 실험의 대상으로 삼는 거라고 봐요. 현재 가혹한 입시경쟁은 대학간의 경쟁이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거예요. 입시경쟁과 대학간 경쟁의 강도는 반비례하죠. 대학 경쟁이 치열해지면 학생을 고객으로 대할 거예요. 대학의 경쟁력은 경쟁 체제에서만 나옵니다. 우리는 고착된 서열 때문에 대학간 경쟁 체제가 조성되지 않았어요. 또 우리가 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죠. 지금도 외국어고, 과학고에서 가장 똑똑한 학생들은 서울대를 우습게 여기고 미국 아이비리그로 가고 있어요. 교육 공급자와 수요자의 이동이 자유로운 시대에 우리 내부에서 완결적 체제를 만드는 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 대학이 세계의 대학과 경쟁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국립대학은 국가의 직영점이고 사립대는 대리점이라는 말도 있어요. 일본이 우리랑 비슷한데 일본학자가 말하기를 일본대학은 문부과학성이 교육사령부가 되어 끌고 가는 거대한 호송선단이고 반드시 동반 침몰한다고 했어요. 이래선 안 되겠다고 해서 일본은 지난해 7월 국립대학법인법안을 통과시켰죠. 89개 대학을 독립행정법인으로 만들어버렸어요. 국립대도 간섭 받지 않고 정부로부터 받은 운영교부금을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죠. 또 각 대학의 학장이 운영조직을 만들고, 학과의 편성과 수업료 책정도 결정할 수 있게 됐어요.

정=일본의 국립대독립법인화도 따져봐야 해요. 대학이 최소한의 공적 기능마저도 잃어가고 학문의 자율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일본식으로 우리 정부도 국립대독립법인을 추진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안 그래도 취약한 대학의 공공성을 없애는 방향으로 갈 우려가 있다는 거죠. 대학평준화는 모든 대학을 똑같이 만들겠다는 게 아니에요. 대학의 물질적 조건과 입학생을 평준화하자는 거죠. 이게 학생, 교수 등 대학 주체들 간의 경쟁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이라고 봐요. 국립대학 체제에 대해 모든 것을 국가가 관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프랑스, 독일은 국립대학 체제이지만 국가가 간섭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어요. 오히려 우리나라의 사립대학에서 이사장의 전횡이 나타나는 경우가 더 많죠. 대학이 국립인가 사립인가 하는 문제는 대학이 어떻게 운영되는가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죠.

김=개인간의 경쟁뿐만 아니라 단위간의 경쟁도 있는 거 아닙니까? 단위를 무시하고 모든 걸 원자화시키는 건가요? 차분차분 또박또박 말하던 김 교수의 말이 빨라졌다. 자세를 더 자주 바꾸고 말머리가 떨렸다. 정 교수는 김 교수 쪽으로 당겨 앉았다. 손동작이 커져 중요한 단어가 나올 때마다 책상을 살짝 두드렸다. 토론이 뜨거워지면서 두 사람도 조금씩 흥분하고 있었다.

정=학문과 교육의 경쟁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는 건 국립대학 체제 때문이 아니라 학벌 때문이에요. 서울대에 입학하는 순간 학생도 공부를 열심히 할 이유가 없어져요. 졸업이 보장되니까요. 지방대에 입학하면 아무리 공부 열심히 해도 지방대 졸업장밖에 못 받으니 또 열심히 안 해요.

김=정 교수님의 주장은 대한민국이 건국을 새롭게 한다면 택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50년 동안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흘러온 지금 그런 방안을 사회가 수용할 수 없다고 봐요. 개인과 개인, 교수와 교수가 경쟁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시는데 교육도 조직화된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하죠. 그렇기 때문에 단위 대학간의 경쟁이 우선한다고 봐요. 미국의 유명한 대학들은 기금을 모집해 우수한 교수, 학생도 데려오죠. 대학간 경쟁이 촉진되지 않은 상태에서 교수와 교수, 학생과 학생간의 원자화된 경쟁은 이론적으로만 가능할 뿐이에요.

정=대학이 주체가 아니라 구성원들 전체가 대학의 주체인 거죠. 대학의 구성원이 연구 많이 해서 프로젝트를 따온다든지 취직을 잘해서 기금이 들어오는 것이지 대학 자체가 행동하는 건 아니죠.

김=구성원의 능력을 결집해 효과를 내는 게 매우 중요해요.

정=민주적 결집이 제일 중요하겠죠. 교수들과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는 게 대학이 존재하는 이유의 처음이고 끝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대학을 평가할 때 교수들이 발표한 논문을 집계하지 그 대학이 모은 기금을 따지진 않아요. 김 교수님의 시각은 시장주의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해요. 신자유주의적인 교육철학이죠. 하지만 저는 이런 교육철학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입시경쟁에서도 벗어날 수 없고 대학의 공적인 기능도 살릴 수 없다고 생각해요. 신자유주의적인 시각에선 대학을 노동력 상품을 생산하는 곳으로 보죠. 양질의 노동력 상품을 생산해 보다 많은 잉여가치를 만들고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거죠. 대학부터 초중고까지 교육의 내용과 목표가 시장논리에 맡겨지게 되죠. 이렇게 훈련 받은 인재들이 더불어 사는 공적인 문제에 관심을 쏟기나 할까요? 김=국가가 대학에서 손을 떼면 교육도 부익부 빈익빈이 될 거란 말이 있죠. 하지만 지금 서울대만 보더라도 상층부 자제들이 많이 가고 있어요. 가난한 사람들이 세금 내서 잘사는 아이들 공부하는데 보조하는 부의 역재분배가 일어나고 있는 거죠. 가난한 사람들에게 고등교육의 기회를 주는 건 국가의 구실인데 국립대의 울타리를 세워놓고 수단껏 여기 들어오면 등록금 덤핑해주겠다는 건 역효과가 있다는 얘기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직접 주라는 거예요. 국립이든 사립이든 어딜 가도 등록금을 지원해주는 거죠.

정=대학평준화를 이야기하면 엘리트 교육을 문제 삼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국립대통합네트워크를 들여다보면 오히려 엘리트 교육하기에 나은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평준화되면 한 대학의 모든 학과에 좋은 교수가 몰릴 수 없으니 학교마다 특성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어요. 예를 들어 대학 10개가 한 분야씩 잘하는 게 있다고 하면 적성에 따라 학생들이 몰릴 거예요. 7번 대학엔 물리를 좋아하는 학생들이 집중하고 3번 대학엔 생물을 잘하는 학생들이 모이는 식으로요. 모든 대학에 엘리트가 분산되는 거죠. 다양한 학문분야가 있는 평준화를 말하는 거지 기계적인 평준화가 아니에요. 어느 대학을 나온 게 아니라 어떤 과목을 누구한테 배우느냐고 중요하게 되니까 경쟁이 분산되죠. 엘리트 교육은 평준화된 대학 체제 밖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지금도 그런 제도로 과학기술대학 같은 것이 있지 않습니까? 김=결국 국가의 구실에 대한 시각 차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는 가능한 한 사립대도 네트워크에 편입하게 해 국가 관리를 강화하자는 것 아닙니까? 저는 거꾸로 우리나라 교육문제는 과도하게 국가가 관리하기 때문이고 국가가 손을 떼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개선 효과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공정한 경쟁의 장만 마련해 달라는 거죠. 어느 것이 더 쉽겠습니까? 대학평준화와 같은 포괄적 국가 관리 체제의 도입은 우리 사회에서 추동력을 끌어내기 힘들어요.

정=국립대통합네트워크에서는 국가가 모든 걸 관리하자는 게 아닙니다. 사립대의 운영의 자율권은 보장하되 다만 시설과 같은 물질적 조건을 비슷하게 하고 학생을 공동선발해서 교육하자는 겁니다. 프랑스처럼 자격시험을 쳐서 합격하면 어느 대학이라도 지망해서 가게 한다는 거죠. 처음엔 관성 때문에 특정 대학에 너무 집중되니까 고등학교처럼 추첨이 불가피할 겁니다. 하지만 2~3년만 지나면 추첨 안 해도 될 거예요. 입학하고 난 뒤 다른 대학에 수강신청을 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열어두는 겁니다. 서울대를 사립으로 바꾸는 건 사태를 악화시켜요. 사립이 되면 서울대의 행동이 더 자유로워지는데 지금 서울대 동문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 자원으로 학벌을 강화하려 할 겁니다. 서울대를 국립대통합네트워크 속으로 편입시켜야 해요. 서울대의 학부 강의를 국립대통합네트워크 학생들에게 개방해야죠. 많은 대학을 서울대 수준으로 만들자는 겁니다.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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