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포럼>불타버린 `국토녹화의 자존심`

[문화일보 2005-04-07 13:14]

한반도(남북한)의 73%는 산이다. 따라서 한국인의 자산 1호는 산 이라고 할 수 있다. 산자락에서 태어나 살다가 뒷산에 묻히는 삶 을 생각하면 우리네 삶은 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다 . 그 밀접한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이어주는 것은 민둥산이 아니 라 산에 자라는 숲, 산림이 있기 때문이다.
한민족은 산림의 성쇠에 따라 번영과 고난의 길을 번갈아 걸었다 . 치산치수를 지혜롭게 했던 시기에는 나라가 융성했다. 반면, 산림이 피폐하고 제대로 가꾸지 못한 때는 민생이 고달프고 급기 야는 나라의 존망조차도 위태로웠다. 이와 같은 사실은 멀게는 고려나 조선시대의 역사가 말해주며, 가까이는 일제의 식민지 침 탈이나 한국전쟁으로 겪은 지난하고 궁핍했던 사회상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 땅의 우리들은 지난 30여 년 동안의 압축고도 성장으로 물질 적 풍요와 정보혁명의 결실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좁 은 국토면적, 과밀한 인구밀도와 함께 대외 의존적 경제구조는 원유수입량 세계3위, 석유소비량 세계6위의 에너지 다소비 국가 라는 부담은 물론,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9위라는 지속불가능성의 멍에도 함께 안겨주고 있다.

우리 사회의 이런 위상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양보다 2.3배나 더 많이 지구 생태계를 훼손하여 얻어진 것이며, 따라서 생태적 으로 만성적 적자 상태임을 환기시킨다. 온 인류에게 진 생태적 부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이런 현실에서, 그나마 위안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앞선 세대가 성취한 국토녹화의 업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세계 문화사를 되돌아볼 때, 황폐된 산림을 완벽하게 복구한 예가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엄격하게 말해서 200여 년 전에 국토를 녹화한 독일과 20세기 후반의 우리만이 이 과업을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사실을 뒤받침이라도 하듯,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한국의 국토녹화를 ‘20세기 유일의 성공사 례’라고 칭송하고 있다. 그리고 독일, 영국, 뉴질랜드와 함께 ‘ 세계4대 조림 성공국’의 반열에 올려놓고 있다. 국토녹화에서 민족적 자존심을 불러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 자존심이 연이어 찾아오는 불청객 산불과 산림병해충들 때 문에 구겨지고 있다. 60회째 맞는 지난 식목일은 강원도 양양과 고성의 산불로 얼룩졌다. 화마가 천년고찰의 문화유산과 수십 년 가꾸어 온 마을과 숲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드는 광경을 생명 과 평화와 풍요의 상징인 나무를 심는 날에 지켜보는 것은 아이 러니였다. 또 작년부터 기승을 부리던 소나무재선충병의 확산소식 은 더욱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단적으로 위정자와 국민 모두가 산림의 혜택을 그저 누리려는 잘못된 의식 때문이다 . 숲이 커가는 속도에 비례해서, 그리고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 와 아름다운 경관으로 누리는 혜택(공익기능)이 나날이 늘어나는 것만큼 적절한 관리와 보호가 필요한 생명자원의 속성은 간과한 채 녹화가 되었으니 할 일이 끝났다고 치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자라는 산림의 양이 1조원에 달하고, 산림의 연간 공익기능 가치가 국내총생산의 8.2%인 59조원에 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면 그에 걸 맞은 방제시스템과 적절한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한다.

앞선 세대가 기반을 조성하고자 각고의 노력을 쏟았으면 오늘의 세대는 내일의 세대를 위해서 가꾸고 지킬 책무가 있다. 옳은 ?湲꼭?결코 한 순간에 만들어낼 수 없다. 국토녹화의 자존심은 국민의 관심과 적절한 투자가 있을 때 지켜진다. 산림헌장에 새 겨진 ‘꿈과 미래가 있는 민족만이 숲을 지키고 가꾼다’는 의미 를 다시금 되새겨본다.

전영우(국민대교수/ 산림자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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