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조원희(경제)교수 투기자본감시센터 운영위원으로 활동
그 얌체 펀드들을 잡아라


운동가와 학자의 ‘연합군’인 투기자본감시센터… 고수익만 챙기는 외국계 투기자본 행태 고발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서울 여의도동 44의 22번지 호성빌딩. 증권산업노동조합이 들어서 있는 이 건물 1002호 한켠에 한 민간기구가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투기자본에 대한 과세 운동을 줄기차게 펴온 투기자본감시센터(대표 허영구).

변변한 자체 사무실조차 갖추지 못한데다 상근자라고는 달랑 2명뿐이어서 언뜻 초라해 보이는 이 센터에 요즘 금융권 안팎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국세청이 론스타 등 외국계 펀드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 최근 들어 알려지면서부터다.


외국계 펀드에 세금 부과, 가장 먼저 외쳐





△ 투기자본감시센터의 초창기 전력은 '한놈만 팬다' 였다. 센터의 첫 목표물로 지목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 (사진/ 한겨레 김진수 기자)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지난해 8월 설립 때부터 외국계 펀드를 중심으로 한 투기자본에 적정한 세금을 물려야 한다는 주장을 선도적으로 제기해왔다. 부동산이나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 주식을 사들였다가 막대한 차익을 얻고도 세금 한푼 물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이런 주장은 바위에 계란을 치는 일쯤으로나 여겨졌다. 조세회피 지역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외국계 펀드에 대한 과세는 국제 조세 관행에 비춰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렇지만 외국계 펀드의 행태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센터의 이런 주장은 차츰 여론의 반향을 얻었다. 뒤이어 심상정 민주노동당, 신학용 열린우리당 의원을 중심으로 투기자본 문제를 연구하는 국회의원 모임이 만들어지는 등 국회에서도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이번에 국세청이 외국계 펀드에 대한 세무조사에 들어간 게 투기자본감시센터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센터의 활동으로 여론이 환기된 게 분위기를 크게 바꿔놓았다는 점에는 별 이견이 없는 듯하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노동 운동가와 진보 성향 경제학자들의 연합군 성격이다. 민주노동 부위원장(1995년~2001년 8월)을 지낸 허영구씨와 이찬근 인천대 교수가 설립 초기 공동대표를 맡았던 데서 이런 성격을 엿볼 수 있다. 허 대표는 공익노련 연구전문노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지부장, 공익노련 위원장, 민주노총 부위원장을 거쳐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으로도 활동했으며, 노동계에선 이론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찬근 교수의 이력은 좀 독특하다. 스페인 나바라대학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산업은행 행원으로 사회에 발을 내디딘 뒤 그가 지금 서 있는 자리와는 좀 멀어 보이는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 부장(1987년 5월~1991년 6월), 맥킨지컨설팅 컨설턴트(1991년 10월~1994년 2월)로 일한 바 있다. 1996년 4월부터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지난 2001년 신자유주의(시장만능주의) 극복을 깃발로 내건 대안연대회의 설립을 주도했으며, 금융산업노조 산하 금융경제연구소장을 맡는 등 대외활동을 왕성하게 벌이고 있다. 투기자본감시센터 대표 자리는 지난 2월 말 내놓았고, 지금은 운영위원으로만 참여하고 있다.



△ 국세청의 외국계 펀드 세무조사로 투기자본감시센터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센터를 주도해온 이찬근 교수(왼쪽)와 허영구 전 민주노총부위원장. (사진/ 한겨레 황석주 기자 · 박승화 기자)






투기자본감시센터를 이끌고 있는 이들은 허 대표와 이 교수를 포함한 17명의 운영위원이다. 노동계 인사 운영위원으로는 굿모닝신한증권 노조위원장 출신인 이정원 증권노조위원장, 외환카드 해고자인 장화식 사무금융노조 부위원장, 최정식 한국국제사무노련(UNI-KLC) 사무처장 등이 있다. 학계 인사로는 이찬근 교수와 함께 대안연대를 이끌어온 유철규 성공회대, 조원희 국민대, 이해영 한신대 교수 등이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난 2003년 (주)진로 경영진과 대주주인 골드만삭스 사이의 분쟁 때 진로 경영진쪽 변호를 맡았던 이대순 변호사도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진로-골드만삭스 분쟁을 고리로 이찬근 교수 주도의 시민운동단체인 대안연대와 만나게 됐으며, 투기자본감시센터 출범 때부터 참여했다. 투기자본감시센터의 활동에서 법적 다툼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이 변호사의 발걸음은 점점 바빠지고 있다.

운영위원회를 보좌하는 2명의 상근 실무진은 정종남 사무국장과 송종운 기획국장이다. 정 국장은 민주노동당 노동위원회에서 일했으며, 송 국장은 서울대 대학원(정치학) 졸업 뒤 곧바로 센터에 합류했다. 송 국장은 지난해 말 토빈세(단기성 외환거래에 부과하는 세금) 연구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 밖에 학계, 노동계, 사회단체 등 150명 안팎의 인사들이 센터 회원으로 등록해 투기자본의 폐해를 알리고 법·제도적 개선을 압박하는 네트워크(그물망)를 형성하고 있다.


“일단은 한 놈만 팬다”


투기자본감시센터가 출범 때 세운 전략은 속된 말로 ‘한 놈만 팬다’였다. “센터의 역량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여기저기 일을 벌여놓으면 제대로 감시를 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장화식 센터 운영위원) 이에 따라 센터의 주요 목표물로 떠오른 게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였다. 론스타의 행태가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데다 외국계 펀드의 문제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판단에서였다고 장 위원은 전했다.

론스타는 단순한 투자펀드여서 법률상 10% 이상의 은행 지분을 소유할 수 없는데도 지난 2003년 외환은행 경영권을 인수함으로써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더구나 론스타가 외환은행 인수를 위해 조성한 회사인 ‘론스타파트너스Ⅳ’가 대표적인 조세 피난처인 버뮤다군도에 있다는 점 때문에 교묘한 탈세 시도라는 비난도 잇따랐다. 지난 2001년 현대산업개발로부터 스타타워(옛 아이타워)를 사들였다가 지난해 말 팔아 3천억원대의 시세차익을 거두는 과정에서 (주)스타타워의 주식을 파는 방식을 통해 부동산거래세를 피해나간 것은 이런 비난을 가중시켰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출범 때 일찌감치 론스타의 행태를 알리는 캠페인을 벌이겠다고 선전포고를 한 데 이어 잇따라 다양한 싸움을 벌인다. 센터는 출범 두달 만인 지난해 10월 금융감독위원회를 상대로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승인을 취소하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어 올해 1월에는 동아건설 파산채권 매각 입찰과 관련해 “외환은행 경영진과 론스타펀드가 공모해 외환은행이 직무상 취득한 업무상 비밀을 대주주인 론스타펀드에 제공했다”며 론스타와 외환은행 대표·이사 등 13명을 특정경제가중처벌법 위반(업무상 배임)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기도 했다. 이 고발건은 론스타펀드가 동아건설 파산채권 입찰 막바지에 참여를 포기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 투기자본감시센터의 줄기찬 요구와 외국계 펀드에 대한 과세론이 힘을 얻고 있다. 투기자본감시센터 발족식에 앞서 진행된 토론회. (사진/ 한겨레 강창광 기자)






론스타에 이어 투기자본감시센터의 목표물로 떠오른 곳은 브릿지증권의 대주주인 영국계 펀드 BIH이다. 센터는 지난 3월 증권산업노조, 브릿지증권노조와 함께 브릿지증권 대주주인 BIH와 이사진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회사 이익과 상관없이 사옥 매각과 고정자산 처분 등을 거쳐 유상감자를 실시해 BIH에게 1290억원을 지불하는 배임 행위를 저질렀다’는 게 고발 요지였다. 이 또한 단기차익을 좇는 외국계 펀드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이런 법정 소송과 함께 대규모 토론회와 투기자본 경제교실 개최, <한국경제가 사라진다> 등의 책자 출간을 통해 투기자본의 문제점을 바깥에 알리는 데도 힘을 쏟았다. 미국 노총(AFL-CIO) 활동가들의 도움을 얻어 론스타의 미국 내 행적을 파악하는 등 국제적인 연대 운동 또한 센터 활동의 주요 축이었다. 이런 와중에 청와대 경제보좌관실에서 올 2월 ‘투기성 외국자본 유입의 영향과 대응 방향’이란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보고한 데 이어 한국은행 산하 금융경제연구원은 3월에 ‘투기성 외국자본의 문제점과 정책과제’라는 보고서를 내놓는 등 투기자본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증폭됐고 과세 주장에 힘이 실렸다.


국수주의 이미지 비판도


열악한 환경에서 출발한 투기자본감시센터가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센터를 보는 눈길이 마냥 고운 것만은 아니다. 이는 센터의 한 축을 이루는 대안연대 소속 교수들쪽에서 차등의결권과 황금주를 도입하자는 주장을 펴는 데서 주로 비롯됐다. 차등의결권은 일부 보통주에 특별히 많은 의결권을 주자는 것이고, 황금주는 정부가 나서 인수·합병(M&A)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재벌을 포함한 국내 기업의 경영권을 보장하자는 것으로, 재벌 개혁 방향에 어긋날 뿐 아니라 시장 규율에 맞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더욱이 이런 주장이 삼성그룹에서 집중적으로 제기됐다는 점에서 비판의 눈길이 따갑다. ‘개방의 폐해를 막는다면서 반개혁으로 가려는 것’이란 비난을 받는다.

외국 자본에 대해 무조건 반대하는 ‘국수주의’라는 이미지를 벗는 것도 센터의 과제다. 허영구 대표는 이와 관련해 “우리의 주장은 투기자본에 대해선 국적을 불문하고 일정한 규제를 둬야 한다는 것으로, 국내 자본을 보호하려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차등의결권 등은 일부 교수의 개인적인 의견일 뿐 센터의 방침은 아니라는 것이다. 허 대표는 앞으로 펼칠 활동 방향에 대해 “원칙적인 얘기보다는 구체적인 사안들에 대해 소송 제기 등으로 세밀하게 대응하면서 전체적으로는 큰 원칙에 맞는 룰(법·제도)을 만드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말 세금을 매길 수 있을까


국세청이 론스타 등 외국계 펀드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최근 알려짐에 따라 이제 관심의 초점은 실제로 세금을 매길 수 있을지 여부다.
지금까지는 국제조세협약(이중과세방지협약) 때문에 외국계 펀드에 대한 과세가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주를 이뤘다. 우리나라가 전세계 62개국과 맺고 있는 이 협약은 국가간 자본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각종 소득에 대해 해당 법인의 소재지 나라 한쪽에서만 과세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세계 곳곳에 세금을 물지 않는 조세 피난처가 있다는 점이다. 본사를 조세 피난처에 두고 있는 법인이라면, 막대한 소득을 올리더라도 이중과세방지협약에 따라 세금을 물리기 어렵게 된다. 제일은행을 인수한 지 5년 만인 지난해 되팔아 1조1500억원의 양도차익을 거둔 뉴브리지캐피탈이 세금을 한푼도 물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뉴브리지캐피탈은 대표적인 조세 피난처인 말레이시아 라부안에 본사를 두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말레이시아와 이중과세방지협약을 맺은 상태다. 한미은행을 인수했다가 되판 칼라일,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 등을 둘러싼 과세 논란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그렇다면 국세청의 세무조사는 헛일로 끝나고 말 것인가.

투기자본감시센터 운영위원인 이대순 변호사는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실질과세 원칙을 적용하면 세금을 매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독일, 일본 등 일부 국가들이 일정 기준을 정해 소득 발생국에서도 과세할 수 있도록 한 데서 볼 수 있듯 조세 피난처에 본사를 둔 외국 자본에 대해 과세하는 게 국제 관례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청와대 경제보좌관실이 지난 2월 대통령에게 보고한 ‘투기성 외국자본 유입의 영향과 대응방향’에도 과세가 가능하다는 의견이 포함돼 있다. 당시 보고서는 “조세회피 목적으로 말레이시아 라부안 등 조세 피난처에 명목상의 회사(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해 주식을 거래하는 경우에는 실질과세 원칙에 따라 과세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국세청이 어떤 성과물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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