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해방직후 在中한인 귀환, 美가 막았다” / 장석흥(국사)교수

[경향신문 2005-05-24 19:57]

해방 직후 중국 내 한인들 상당수는 미국의 잔류 정책에 따라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귀환길이 봉쇄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오늘날 5백만명에 달하는 해외 한인들의 운명이 미국의 정책에 의해 결정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주목된다.

국민대 장석흥 교수(한국사)가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소장된 ‘중국 내 한인에 관한 미 국무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미국은 만주지역 한인의 거취에 대해 “방대한 수의 한인이 귀환할 경우 한국 내 인구 과잉이 극히 악화될 것이기 때문에 귀환을 강요하기보다는 잔류시키자”는 쪽으로 결론 짓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장교수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논문 ‘태평양 전쟁기 미국의 해외 한인 귀환정책’을 오는 27~28일 국민대에서 열리는 제48회 전국 역사학대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미 국무부의 ‘전후 대외정책 자문위원회’(Advisory Committee on Postwar Policy)가 종전 직전인 1945년 3~6월에 작성한 자료에는 중국 내 한인의 역사, 주거 및 직업 상황과 함께 일본 패망시 1백60만명의 한인 처리 문제가 소상하게 담겨 있다. 3월28일 작성된 ‘한국:정치적 문제들:한국 밖에 있는 한국인들’이란 문서에는 “‘만주국’의 기술·행정 분야에 근무하는 2만~2만5천명의 한인을 새롭게 구성될 행정부에서 일하게 하는 것이 중국을 위해 바람직하다”면서 그 이유로 한인은 다른 종족보다 중국인에 더 쉽게 동화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이는 한인들의 뜻보다는 만주의 질서 및 중국의 입장이 우선시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한인들이 모여 사는 간도의 경우 ‘간도지역의 민족별 인구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한인의 상당수가 귀환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도 한인들이 대거 귀환하면 한국에 경제적 어려움이 초래될 것이라며 ‘잔류’ 쪽으로 방향을 유도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잔류 대상으로는 친일파 또는 반중국적 민족주의자를 제외한 한인으로 하며 잔류 한인에게는 중국인으로서 귀화 권리가 부여되는 것이 좋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장교수는 “당시 미국이 파악하고 있는 재만 한인 1백45만명(실제는 2백여만명) 가운데 1백20여만명을 현지에 잔류시킨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에서는 만주와 달리 한인들의 대부분을 귀환시키고자 했다. ‘재일 한인 대부분이 경제적 상태가 결여된 일용노동자들로 종전시 이들의 노동이 필요없을 뿐 아니라 식량부족이 예상돼 일본이 1백만명이 넘는 한인들을 먹여 살리기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45년 4월 작성된 미국의 재일 한인 관련 문서는 ‘1백50만 재일 한인 가운데 1백20만명이 귀환하고 30만명이 잔류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장석흥 교수는 “중국·일본 내 한인들의 귀환 문제는 해방 이전은 물론 해방 후에도 미국의 정책에 의해 좌우되고 있었다”면서 “이런 과정에서 5백만명의 해외 한인은 미국의 ‘동아시아 평화체제’ 유지를 위한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한편 27~28일 역사학회(회장 김두진) 주관으로 열리는 전국 역사학대회에서는 올해 100주년을 맞는 ‘을사조약과 20세기 초의 한반도’를 공동주제로 채택했으며, 이밖에 14개 분과학회별 발표와 토론회가 열린다. 분과별 주요 주제는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전후 한반도와 일본’(한국사연구회), ‘국가와 가족’(한국사학회), ‘20세기 초 서구 사상의 수용과 변용’(한국역사연구회) 등이다. (02)739-0036


〈조운찬기자 sidol@kyunghyang.com〉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