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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플러스] 최연소 주심 최광보씨 통해 본 / 체육 동문

[국제신문] 2005-05-23 22:05

선수보다 더 뛰는 `고독한 포청천`|프로축구 K리그 심판의 세계|선수 출신이라 자만하다 체력시험 낙방|오심방지 상벌제 강화…매경기 '살얼음'|"큰 경기 한번 치르면 저도 훌쩍 큽니다"

'그라운드의 포청천'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축구 심판 피에르루이기 콜리나. 선수든 팀이든 팬이든, 그 누구도 항변하지 못하는 공정한 판정으로 명성이 자자한 콜리나 주심도 분명 프로리그에서 처음 주심으로 나섰을 때는 떨리고 부담스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프로축구 K리그에도 '한국의 그라운드 포청천'을 꿈꾸며 이제 막 프로축구 무대에 적응하고 있는 30대 젊은 심판이 있다. 부산 동아고 출신의 K리그 주심 2년차인 최광보(36)씨가 그 주인공. 이번 주 '스포츠플러스( )'는 최연소 주심인 최씨의 심판 입문기를 통해 프로축구 심판들의 안과 밖을 들여다 본다.

▲축구 심판?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한국의 프로축구 심판은 총 30명. 주심이 14명이고 부심은 16명이다. 1969년생인 2년차 최광보 심판은 대학 동기이자 친구인 김성호 심판과 함께 주심 14명 가운데 최연소 심판으로 꼽힌다.

부산 금정초등과 동래중 동아고를 거쳐 국민대를 졸업할 때까지 축구 선수로 활약했던 최 심판은 프로팀과 실업팀의 스카웃 제의를 뿌리치고 중학교에서 기간제 체육교사 생활을 하다 우연한 기회에 축구심판이 됐다.

현재 K리그 심판 상조회장을 맡고 있는, 역시 부산 출신인 김선진(44) 심판의 끈질긴 권유가 큰 계기였다. 지난 99년께 처음 심판 데뷔를 권유 받을때 까지만해도 최 심판은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밑져봐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응시한 3급 심판 시험에서 체력테스트에 낙방하자 최 심판은 '그래도 축구선수 출신인 내가 체력에서 실패하다니'라는 오기가 발동, 본격적으로 준비한 끝에 결국 2000년 3급 자격증을 획득하며 축구심판계로 뛰어 들었다.

▲K리그 주심, 만만찮네 어느 종목이나 마찬가지지만 심판을 두고 흔히 '고독한 직업'이라 일컫는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선수에 비해서는 빛나지 않고, '가장 눈에 띄지 않아야 가장 심판을 잘 본 것'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2004년 대망의 프로 1군 무대인 K리그에 데뷔했지만 최 심판은 이전까지와는 다른 극심한 부담감으로 인해 한 시즌을 어떻게 보냈는지 잘 모를 정도였다.

특히 29경기에서 주심을 보면서 전체 3위의 출전 경기수를 기록, '새내기 주심' 치고는 꽤나 잘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한 경기 한경기의 승부에 너무 민감한 프로 1군 경기의 상황에 잘 적응되지 않았던 것.

양팀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팬, 구단 등으로부터 받는 항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고 그로 인한 후유증도 만만치 않았다. 최 심판은 그 가운데 지난해 서울과 성남전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

"당시 성남측에 페널티킥을 선언했는데 상대팀인 서울의 조광래 감독이 너무 심하게 항의하는 바람에 힘들었다"는 최 심판은 그래도 데뷔 1년차에 그 흔한 징계 한번 받지 않고 무사히 넘긴 것이 다행스럽다고 한다.

▲한 경기 한경기가 시험대 올해 부터 K리그는 각 구단의 심판 판정에 대한 사후 제소신청 제도를 없앴다. 대신에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자체적으로 심판들에 대한 면밀한 사후 검증으로 상벌제도를 강화했다. 물론 구단들이 초반에는 많은 반발을 했지만 연맹측이 삼성하우젠컵대회를 거치면서 장담한대로 오심을 한 심판에 대한 징계를 강화하자 서서히 사그라 들었다.

반면 제소 남발 방지와 심판 스스로 보다 공정한 판정을 내리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이 제도는 오히려 심판들 본인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최 심판은 "매 경기마다 사실상 '감사'나 마찬가지인 비디오 검증을 받는다. 매 경기가 시험인 셈"며 "그래서 피를 말리는 기분이다. 아직은 징계를 안받았지만 언제 실수할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늘 따르기 때문"이라며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큰 경기를 거치면 나도 큰다" 최 심판은 올해 들어 결코 잊지 못할 '빅매치'를 진행했다. 바로 지난 4월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FC서울과 수원 삼성의 라이벌전.

박주영이라는 샛별의 등장으로 최고 인기 구단이 돼 버린 서울과 한국의 레알 마드리드를 꿈꾸는 수원의 경기는 언론과 팬들로부터 집중적인 관심을 끈 경기였다.

부담감 때문에 10년차 베테랑 심판들도 주심으로 나서길 꺼려하던 이 경기에서 2년차에 불과하면서도 당당히 주심으로 나선 최 심판은 이날 기어코 사고를 쳤다.

수원 삼성 수비수의 반칙 상황에서 가차없이 페널티킥 선언을 한 것. 당시 차범근 수원 감독과 수원 원정팬들은 격렬하게 항의했지만 경기 직후 비디오 분석에서 명백한 페널티킥 상황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최 심판은 "서울-수원전을 계기로 훌쩍 커버린 느낌이다. 이제는 어떤 경기의 심판을 맡아도 주눅들지 않을 것 같다"고 밝혔다. 큰 경기를 진행하면서 커 나간다는 것이다.

▲가까이서 보기위해서는 체력이 관건 프로축구 1경기에서 선수들이 뛰는 거리는 8㎞정도. 그렇다면 주심은 얼마나 뛸까. 최 심판은 "선수들보다 1.5배는 더 뛰죠. 경기당 12㎞ 정도를 쉴새 없이 달립니다"라고 말한다. 판정이 내려질때마다 너무나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선수들과 벤치의 항변을 이겨내려면 공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휘슬을 불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 심판은 "주심이 조금만 멀리서 휘슬을 불면 선수들은 무조건 오심이라고 항변합니다. 결국 영을 세우기 위해서는 스스로 많이 뛰는 수 밖에 없죠"라고 설명한다. 그는 등산과 트랙달리기 러닝머신 등을 가리지 않고 시간만 나면 체력강화에 모든 정성을 쏟는다.

▲경기 흐름을 끊지 말자 축구 선진국인 유럽의 축구경기를 보면 왠만해서는 심판이 경기의 흐름을 끊지 않는다. 그만큼 팬들을 위한 서비스가 되는 셈. 하지만 국내 K리그는 수없이 많은 주심의 휘슬로 인해 경기 흐름이 끊어지기 일쑤다.

최 심판은 "국제심판이 돼서 월드컵 무대에 서는 것이 가장 큰 꿈이지만, 당장은 현재 경기당 평균 40개를 넘는 파울 개수를 20개 내외로 줄이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물흐르는 듯한 경기를 이끄는 숨은 일꾼, 그것이 자신의 소임임을 이제야 깨닫고 있는 것이다.

▲나쁜 남편, 못난 아빠? 프로축구 심판들은 말 그대로 집에서는 나쁜 남편, 못난 아빠이다. 남들이 쉬는 휴일에는 무조건 축구경기를 위해 출장을 가야 하기 때문. 현재 규정상 그 지역 출신 심판은 해당 지역 연고팀의 경기에 나설 수가 없기 때문에 최 심판 역시 부산 아이파크의 홈 경기에는 출전할 수 없다.

자연스레 주말과 주중 출장을 가다 보니 부인과 딸(8세) 아들(3세) 등 자녀에게는 미안할 수 밖에 없다.

이승렬기자 bungs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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