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투데이] '한·일 국교 40주년' 학술대회

[중앙일보 2005-06-15 21:12]


나의 전공은 중국 정치 또는 중국을 둘러싼 국제 관계다. 과거에 나는 칼럼에서 중.일 관계는 한.일 관계에서 배울 점이 있다고 쓴 적이 있다. 최근 이것을 서울에서 실감했다. 나와 같은 분야의 일본.중국 측 참석자들도 같은 마음이었다. 한.일 국교 정상화 40주년을 기념해 '한.일 관계와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비전을 찾아서'란 주제로 2~4일 서울 시내의 호텔에서 개최된 국제학술회의에서였다. 이 국제회의는 한국현대일본학회, 한국국제정치학회, 한.일경상학회, 일본국제정치학회, 중앙일보 등이 많은 재단과 기업의 지원을 받아 공동 주최했다. 한국에서 수백 명이 참가했고, 일본에서도 60명 이상의 학계 관계자와 그 밖의 연구자.언론인, 그리고 한국 주재 외교관.기업인 등이 다수 참석했다. 사상 최대의 한.일 학술회의였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 문희상 한.일의원연맹 한국 측 회장, 이홍구.박태준 전 국무총리,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일본 총리 등도 초대됐다.

개회식, 기조연설, 전체회의에 이어 역사, 정치, 경제.경영, 사회.문화 등 4개 분야에서 총 12개의 분과회의가 열렸다. 양국의 기업인, 정치인, 군사.안보 전문가, 언론인 등이 참가한 4개 분야의 라운드 테이블도 마련됐다. 이번 대회에는 총 1000명 정도(연인원)가 참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양국 연구자 사이에는 동창회와 비슷한 분위기가 감돌아 대회는 거대한 교류의 장이 됐다. 일본 측 참석자들은 "한국의 파워는 대단하다"고 입을 모았다.


올해는 한.일 국교 정상화 40주년을 맞아 '한.일 우정의 해'이기도 하지만 현재 양국 관계는 영토와 역사 문제로 인해 좋은 상태는 아니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이번 대회의 개최를 주도했던 김영작(국민대 교수) 한국현대일본학회 회장은 "악화된 관계일수록 협력.평화.공영을 키워드로 해 솔직한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확실히 양국 간 토론이 매우 뜨거웠던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학자들의 모임이고, 참가자들이 개인 자격이었기 때문인지 한국인 또는 일본인 간에도 치열한 논쟁이 전개됐다. 이것이 열린 사회의 구성원들이 벌이는 토론의 참맛이기도 하다.


내가 참가한 재미있는 토론의 하나는 언론인 라운드 테이블이었다. 양국 언론인들이 서로 과잉 보도하고 있는 현실을 인정한 점이 몹시 흥미로웠다. 일본에선 상업주의가 너무 심해 구독률이나 시청률에 너무 집착하는 반면 한국에선 국익이나 내셔널리즘의 관점이 너무 강하다. 이 토론의 의장이었던 중앙일보 길정우(영어신문 발행인)씨는 최종적으로 "과장보다는 사실보도, 일관된 자세, 단순화의 회피, 내셔널리즘에 대한 성숙한 대응 등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적절한 총평이었다.


이 같은 모임에서 간단히 결론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몇 가지 점에 대해선 기본 합의가 이뤄진 것이 사실이다. ▶향후에도 이런 대화를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다▶학자나 언론인이 자유로운 입장에서 솔직한 토론을 하는 것이 앞으로도 필수적이다▶양국 사이에 놓여 있는 역사의 벽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자▶서로의 입장과 주장을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발상이 요구된다▶글로벌리즘(세계화)을 통해 양국의 내셔널리즘을 동북아시아의 지역주의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 등이다.


국가 관계가 좋지 않을수록 학자나 지식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서구세계에는 '지적공동체'라는 개념이 있다. 지적 세계에서 교류와 토론을 계속함으로써 국가나 주권이 넘을 수 없는 벽을 극복하도록 노력하자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국가 관계의 저변을 지탱해 가는 것이다. 이번 대회가 이런 지적공동체를 형성하는 첫걸음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고쿠분 료세이 게이오(慶應)대 동아시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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