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성공]황무지에서도 비탈에서도 나는 춤의 손을 놓지 않는다 / 장승헌(무용)강사

[경향신문 2005-06-19 16:15]



‘언어’가 있기 전에 ‘몸짓’이 있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예술 장르가 무용이지만, 대중에게 가장 낯선 장르 또한 무용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그만큼 척박한 이 땅의 무용계에서 10년 동안 한결같이 무용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 있다.

국내 유일의 무용전문기획사 MCT(Management of Culture & Theater)의 장승헌 대표(46·국민대 강사)다. 올해로 MCT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비탈에 선 나무처럼 매 순간이 힘겨웠지만 무용에 대한 열정 하나로 10년 세월을 묵묵히 지켜왔다. 돈이 되는 일은 아니지만 ‘좋아서 하는 일’의 보람과 열정의 순간들을 추적했다.


#춤의 꽃밭에 핀 남자


‘무용계에 종사한다’고 하면 율동으로 다듬어진 미끈한 몸매와 세련미 넘치는 사람일 것이라는 상상을 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장승헌 대표는 아니다. 투박한 경상북도 사투리에 ‘수더분한 아줌마’ 같은 인상이다. 그러나 꽃무늬 셔츠에 빈티지풍의 베이지색 재킷에서 풍기는 낭만은 그가 왜 지금 이 자리에 있는지를 가늠케 한다.


“문학에 흥미가 있었지만 평범하게 살기를 바랐던 부모님의 기대 때문에 내 안의 끼를 무의식적으로 누르며 살았죠.” 송곳을 아무리 주머니 깊숙이 숨겨 놓아도 그 뾰족함 때문에 삐져나오는 것처럼 장대표의 끼는 삐죽삐죽 불거져 나왔다. 대학입시원서 창구에서 그는 아무도 몰래 경영학과 지원서를 신문방송학과로 고쳤다. 그러나 신문방송학과 수업도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당시 내 안에는 낭만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어요. 음악, 미술, 패션까지 관심대상이었고 그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아우르는 장르가 무용이라고 생각했어요.” 틈만 나면 무용과 음악을 전공하는 친구들과 어울려 공연을 보러 다녔다. 알음알음으로 공연 관계자들과 눈인사하다 1980년대 초 연극전문지 ‘까망’과 ‘스테이지뉴스’라는 문화잡지를 창간했다. KBS 라디오 문화 프로그램에도 간간이 출연했다. 우연히 그의 방송을 듣게 된 당시 국립극장장은 그를 국립극장 기획실 전문인력으로 발탁했다.


#사심없이 기꺼이…


“국립극장 생활이 유익하고 보람도 있었지만, 그대로 눌러 앉기에는 뭔가 허전했어요.” ‘길’ ‘바람’ ‘행장’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그는 자신을 “체질적으로 방랑인의 기질이 다분한 사람”이라고 고백했다. 장대표는 자신의 탈(脫)직장생활을 기질 탓으로 돌렸지만, 무용에 대한 그의 사랑은 업무로만 충족하기에는 너무나 아쉽고도 뜨거운 대상이었다. 정대표는 8년의 직장생활을 과감히 접고 1995년 우리나라 최초로 무용전문 공연기획사 MCT를 설립했다. “큰 공연으로 대박을 꿈꾼 적은 없습니다. 약자의 편에 서서 작지만 의미있고 소중한 공연을 만들자는 마음입니다.” ‘우리 시대의 무용가’ ‘한국 남성안무가 초대전’ ‘춤의 고을 고성사람들’ ‘춤을 찾는 사람들’ 등 10년 동안 그가 기획, 제작한 공연을 통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애써 왔는지 알 수 있다.


#다시, 첫 마음으로!


“무용이 좋고 무용하는 사람들이 좋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10년 동안 그저 열심히 일한 기억밖에 없다. 그래서 10년이 하루같다고 말한다. 그래도 10년이라면 마디와 매듭을 지을 수 있는 시간. 그래서 MCT 창립 10주년 기념으로 ‘우리 춤 스타 Big4 초대전’을 24~25일 서울 호암아트홀 무대에 올린다. 김매자, 조홍동, 정재만, 김말애 등 우리춤 명인들이 무대에 선다.


10년 전, 맨몸으로 황무지나 다름없었던 무용 기획이라는 분야를 개척한 사람. 길없는 길을 만들면서 어려움도 많았지만 보람도 컸다. 그러나 요즘 그는 불면의 밤을 보낸다. 이제 예술분야에도 경영이 접목되면서 더욱 치열한 프로페셔널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한 분야에서 10년, 웬만하면 도가 통한 듯도 하지만 그는 다시 신발끈을 조여매고 행장(行裝))을 꾸린다. 더 아름다운 춤의 꽃밭을 가꾸기 위해.


〈글 김후남기자 khn@kyunghyang.com 〉


〈사진 김영민기자 vole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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