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DT시론] 알렉산더가 SW정책가라면 / 김현수(BIT대학원장)교수
[디지털타임스 2005-08-03 08:44:33]


김 현 수 한국SI학회장ㆍ국민대 교수

`고르디온의 매듭' 이야기는 고대 마케도니아의 전설적 정복왕 알렉산더의 성격을 상징하는 대표적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기원전 334년 알렉산더는 정복전쟁 중 프리지아의 고르디온에 들어섰을 때, 고르디오스와 그의 아들 미다스가 타고 왔던 마차의 매듭을 풀었다. 마차의 어렵게 묶어둔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의 주인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는데, 알렉산더는 `어떻게 매듭을 푸는지,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고 하며 고르디온의 매듭을 단칼에 끊어버렸다고 한다. 알렉산더가 소프트웨어정책가라면 어떤 정책을 펼칠까?

최근 필자는 소프트웨어산업정책 20년을 정리하면서, 그동안의 정책 변천과정을 이슈중심으로 분석할 기회가 있었다. 1980년대 초창기에는 행정전산망 사업 등 수요창출 전략이 산업발전에 기여하였다. 1990년대 이후의 벤처육성 정책은 소프트웨어 산업의 양적 확대와 위상 제고에 기여하였고, 인력양성정책은 초급 및 중급인력의 대량 공급을 촉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 소프트웨어산업은 고부가 서비스업의 선순환 사이클에 진입하지 못하고 어려움 속에 고전하고 있다.

5년 전에 우리는 2005년경 소프트웨어산업은 37조원 규모로 성장하고, 수출은 33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이를 위해 틈새시장 공략을 통한 해외진출활성화 지원, 전산시스템 외주 활성화 지원,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고급 인력 양성 지원,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반기술 개발 지원, 수도권외 지역의 지방소프트웨어산업 성장기반 강화 등의 정책을 수년 동안 추진하였다. 그러나 2005년 올해 산업규모는 20조원 내외로 추정되고 있고, 수출은 10억 달러에 미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예상보다 더디게 성장하고, 정책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알렉산더가 고르디온의 매듭을 단칼에 끊어버렸듯이, 경쟁력 강화를 저해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단칼에 끊어버렸어야 했다. 우리 제품과 기술력이 해외 기업들의 제품이나 서비스보다 못하다는 차별 의식을 단칼에 잘라버려야 하였으며, 시장에서 오직 품질과 능력에 의해서만 경쟁하도록 해야 하였으며, SI(IT서비스)사업이 수행되는 관행적인 악순환 환경을 도려내야 하였다. 또한 과업내용을 변경하기 어려운 경직된 예산제도, 우수한 발주자의 역량 발휘를 제한하는 통제중심의 감사제도, 수주자와 발주자의 계약 및 사업관리 관행 등을 큰 틀에서 혁신해야 했다. 얽히고 설킨 관련자간의 이해관계와 오랜 악습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피상적인 개선만을 추구하다보니, 정책효과도 잘 나타나지 않고, 시장발전도 정체되고 있는 것이다.

알렉산더는 열두 해를 넘지 않았던 짧은 행군속에서(기원전 336~324) 당시에 알려진 세계를 거의 모두 정복하였다. 우리 소프트웨어 산업도 방향을 바로 잡는다면 열두 해만에 세계를 정복하고, 최고의 소프트웨어 강국이 될 수 있다. 돈오점수라고 하였다. 결심은 단번에 할 수 있지만, 그 완성을 보는 일은 지속적인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긴 시간을 인내하며 노력할 수 있는 열정을 우리 모두가 가져야하는 것이다. 열정이라고 번역되는 passion 이라는 단어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수난(suffering)과 고통을 견딤'이다. passion의 첫 번째 용례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겪은 수난'임을 기억한다면, 우리가 가져야하는 열정(passion)의 깊이와 크기를 알 수 있지 않은가. 소프트웨어산업 발전을 위한 손쉬운 처방만을 바라기보다 쾌도난마의 결심과 긴 고통의 시간을 견디어내는 열정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다. 모두가 기본에 충실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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