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천상병 시인 육필 복원한 김민(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교수
천상병 시인 육필 컴퓨터로 살려냈다



1년6개월 작업끝 '귀천체' 만든 김민 교수 팀


오윤희기자 oyounhee@chosun.com



입력 : 2005.10.09 22:14 40' / 수정 : 2005.10.10 00:55 56'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래아글꼴연구소(www.araea. co.kr)가 최근 펴낸 ‘천상병 귀천’ 시집을 펼치면 활자 대신 빼뚤빼뚤한 육필(肉筆) 글씨체로 인쇄된 ‘귀천(歸天)’이 눈길을 붙든다. ‘귀천’뿐이 아니다. 시집에 수록된 ‘편지’ ‘나의 가난은’ 등 137편 모두 어린아이 같은 천 시인의 특유의 필체, 일명 ‘귀천체’로 인쇄되어 있다. 천 시인의 육필시원고는 대부분 없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시인의 자취를 되살려 내고 싶은 마음으로 컴퓨터와 씨름한 서체 전문가들이 죽은 시인의 육필들을 복원해낸 것이다.




주인공은 김민(44·국민대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 교수. 그는 아내인 홍승완(43·안양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와 김주영(34·직지소프트 디자인 실장), 전재홍(29·아래아글꼴연구소 선임연구원)씨와 함께 1년6개월을 매달렸다. 시인의 각종 필적들을 찾아내 디지털폰트로 만든 끝에 필체를 복원한 시집을 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이 작업에 김 교수가 뛰어든 계기는 2002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학생을 위로하다가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난 후 그 사람의 생전 글씨체를 복원해서 컴퓨터에 저장해두고 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 시인 천상병의 육필을 복원해 ‘귀천체’를 만든 사람들. 왼쪽 아래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민 국민대 교수, 홍승완 안양대 교수, 전재홍 연구원, 김주영 실장. /이명원기자 mwlee@chosun.com




그러던 김 교수 내외는 지난해 서울 인사동 ‘귀천’ 카페에서 천 시인의 아내 목순옥 여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라진 천 시인의 육필을 복원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천 시인의 미발표작 등 15편의 시 원고와 1편의 평론 원고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들 원고에서 발견된 424자의 손글씨를 토대로 ‘천상병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나의 서체를 완성하려면 2350자를 만들어야 하므로, 남아있지 않은 글자들은 천 시인 육필 속의 자·모음을 조합하거나, 획을 분석하고 변형해서 하나하나 만들어 갔다.




김 교수는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때마다 모니터에 머리를 대고 ‘나는 천상병이다’라고 되뇌며 계속했다”고 털어놓았다.




이들은 올해 1월, 사비를 들여 자택을 개조해 출판사를 차리고 직접 책을 냈다. 그는 앞으로도 윤동주 시인 등 작고한 인물들의 육필 복원을 계속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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