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시론] 또 한번의 검찰학살을 보며 / 이호선(법학부) 교수


 

헌법 질서 파괴한 2차 검찰인사
칼날 신성화하려면 이유 있어야
秋가 등판시킨 檢이 내놓는 결과
국민들 곧이 곧대로 믿지 않을 것

이제 속이 시원할까. 모든 것을 끝냈다고 안심이 될까.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3일 검찰 인사를 통해 청와대·여권 수사를 이끌던 수사팀의 실무자 몇 명만을 남기고 지휘 라인에 있는 차장검사 전원을 날려 버렸다. 5선 중진에 여당 당대표까지 지내면서 미처 누리지 못했던 권력의 화끈함을 짜릿하게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진작 이 좋은 장관 자리를 왜 하지 않았을까 하는 뒤늦은 후회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추 장관은 “ 악법도 법”이라며 소신과 명예를 길이 남긴 소크라테스와 같이 대한민국 헌정사에 길이 남을 수도 있었던 호기(好機)를 스스로 걷어차 버렸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재판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법의 기본정신을 한 번만 돌아봤더라면 ‘자신을 수사하는 대상을 자기가 정하는’ 초법적인 발상을 감히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당당하게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권력을 향한 수사에 권력이 개입하는 일을 막는 것이 법무부 장관에게 주어진 소임’이라고 말했더라면 대한민국 헌정사에 큰 획을 긋는 자랑스러운 전통을 세웠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추 장관은 이를 외면함으로써 영원히 사는 길을 버리고, 잠깐 살고, 영원히 추하게 남는 인간으로 전락해 버렸다. 영원한 오명을 남겼을 뿐 아니라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배신한 반역자로도 평가받을 수 있다. 검찰은 단순한 행정기관이 아니다. 법을 집행하는 준(準)사법기관이다. 추 장관은 행정부에 많은 청(廳)들이 있지만 그 장(長)을 임명함에 있어 헌법에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는 기관장으로 검찰청의 수장인 검찰총장을 맨 앞에 들고 있고, 국민의 신체와 재산에 대한 공권력의 개입에 있어 반드시 검찰총장을 필두로 동일체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검사에 의한 영장 신청이 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추 장관은 인사권을 빙자해 헌법 정신을 해치는 행동을 저질렀다. 합법이라고 강변하고 싶겠지만 억지일 뿐이다. 역사상 그 어떤 반역 치고 정당하다고 스스로 주장하지 않은 바 없고, 어떤 모반도 합법의 탈을 가장하지 않은 바 없다. 2차 검찰 인사를 보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장면과 대사가 있다. 추 장관에게 셰익스피어의 사극 ‘헨리 4세’ 2부에 나오는 몇 장면을 꼭 한 번 소개하고 싶다. ‘검찰 학살’로 표현되는 지난 8일 인사에 이어 23일의 ‘추가 학살’로 어느 정도 심신도 지쳤고 하루 뒤면 설 명절을 맞게 되는 만큼 그가 이 불후의 명작을 찾아서 한 번 보시기를 강력히 권한다.  

‘헨리 4세’에 나오는 대사 중 이런 대목이 있다. 반역의 무리에 가담한 요크의 대주교에게 왕의 편에서 사자로 온 웨스트모어랜드 백작이 한 말이다. “반역이 비천한 폭도의 형태를 갖추고 누더기로 옷 입고 혈기 방장한 무모한 불량배들과 걸인들의 후원으로 일어난 것이라면 당신은 이 비열하고 잔인한 폭동에 추한 장식을 갖춰주는 들러리로 나서지 말았어야 합니다. 왜 당신은 축복을 주는 평화를 거칠고 소란스러운 전란의 소음으로 바꾸는 악역을 맡고 있습니까. 고귀한 책의 표지를 갑옷 정강이 받침대로 삼고 잉크를 피로, 붓을 창으로, 신성한 혀를 전쟁을 알리는 나팔로 삼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이유 없이 조작된 불법 잔학한 반역의 맹약서에 신성한 인감을 날인하고 반역의 참혹한 칼날을 신성화하려면 그 이유가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헌법과 법률의 명문 규정, 그리고 그 정신을 멋대로 짓밟은 추 장관에게 가혹한 역사의 심판은 물론, 당장 법 앞의 심판도 가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수사팀으로 발령받은 검사들에게도 이 말은 그대로 해당한다. 추 장관이 선발해 등판시킨 검사들이 어떤 결과를 내놓더라도 많은 국민들은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셰익스피어의 위 연극에 나오는 평범한 소시민의 생각이 국민들의 정서이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이놈의 판사들을 죄다 털어줄 테다. 셸로우 판사 놈의 얕은 밑바닥이 보인다. 이놈의 판사는 세 마디째마다 터키 왕에게 공물을 바치듯 때를 어기지 않고 듣는 자에게 거짓말을 지어 바친단 말이야.”  

오늘은 우리 사법체계의 신뢰 확보를 위해 매우 불행한 하루다. 그리고 이것은 추 장관의 자업자득일 수밖에 없다. 헨리 4세에 맞섰던 반역의 수장 노섬버랜드 백작의 비통한 아래와 같은 독백으로 대한민국 헌정사에 또 하나의 오점이 남은 오늘을 정리해본다.  

“이 사람의 얼굴은 각본의 표지처럼 비극의 내용을 예언하고 있구나.”


원문보기: https://www.sedaily.com/NewsView/1YXRBWPX5Q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 이 기사는 '뉴스콘텐츠 저작권 계약'으로 저작권을 확보하여 게재하였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