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과학적 시민권의 시대 / 김환석(사회)교수
[한겨레 2005-08-28 18:06]


광복 60돌을 맞아 각 분야에서 그동안 우리나라가 이룬 성취와 문제점에 대한 평가작업이 활발하다. 정치 민주화와 경제 발전에 대한 회고와 전망이 대체로 단골 메뉴가 되고 있지만, 나는 여기서 과학기술에 초점을 두어 얘기해보고 싶다.
이는 과거야 어찌 되었든 우리의 미래는 점점 더 과학기술이 크게 좌우하는 첨단 시대가 될 것이라는 일반적 인식에 꼭 공감해서라기보다는, 사실상 정치 민주화와 경제 발전의 문제 자체가 과학기술을 빼놓고 얘기하면 다분히 공허해질 위험이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정부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매년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지표에서 올해 우리나라의 종합순위는 세계 29위에 머물렀지만, 기술경쟁력과 과학경쟁력은 각각 2위와 15위로서 선도적 위치에 올라섰다고 자랑스럽게 발표했다. 한마디로 다른 부문들은 아직 낙후되어 국가경쟁력의 발목을 잡고 있지만 과학기술은 이미 선진국 수준에 근접하여 국가발전을 앞에서 견인하는 모범적인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표상하는 구체적인 예로서 작년에 이어 올해 국내외 언론을 떠들썩하게 장식하였던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연구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황우석 교수처럼만 해라, 그러면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는 건 문제없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정부가 지금 하고 싶은 말이리라.

과학기술의 이러한 이미지는 과연 올바른 것일까? 최근 유럽과 미국 등 이른바 ‘선진국’에서는 과학기술과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서구에서 등장하여 전세계로 확산되어 온 근대성 그리고 이것의 총아라 할 수 있는 과학기술이 인류를 무지와 빈곤으로부터 해방하여 합리성과 확실성에 기반을 둔 이상적인 사회를 선사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전쟁, 테러리즘, 지구 온난화, 에너지 위기, 체르노빌, 보팔, 광우병, 유전자조작식품, 인간복제 등등…. 과학기술이 약속하는 물질적 풍요는 수많은 인간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생태계의 파괴를 담보로 한 것임이 분명하게 드러나자,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일반대중의 신뢰는 크게 흔들리고 있다. 오히려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미래는 더욱 불확실하고 위험하며 복잡하게 꼬인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이에 대응하여 서구의 학계와 정치권에서는 ‘과학적 시민권’의 확립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과학기술이 위험을 내포하고 있지만 우리가 이미 과학기술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도 자명하다면, 전문가가 독점하고 있는 과학기술의 거버넌스를 민주적으로 좀더 바꾸어 과학기술 발전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사회가 돌려놓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과학적 시민권’이란 사회 속에서 과학기술이 일으키는 쟁점들을 공론장으로 끌어들여 다양한 시민들에 의해 토론되도록 만들고 그러한 민주적 토론을 바탕으로 이들의 정책결정 참여와 선택권을 보장하는 것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이상적인 미래가 올 것이라는 약속은 이미 과학기술의 선진국인 서구에서 파산난 지 오래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정부와 언론 그리고 일부 과학자들이 나서서 아직도 그러한 근거없는 신화를 국민에게 퍼뜨리고 있다. 이제 광복 60돌을 맞아 우리도 과학기술에 대해 현실적이고 균형있는 시각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것이 곧 진정한 정치 민주화와 경제 발전을 보장하는 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국민대 교수·과학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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